임동희(1938~2000)

‘누구도 아프게 안 했고, 그래서 가난한 내 아버지’(노래 ‘아버지와 통닭 한 마리’ 중)라는 가사와 ‘열두 가지 재주 가진 사람이 굶어 죽는다’는 속담. 아버지를 떠올릴 때면 연상되는 말들이다.

아버지는 선했고, 다양한 재주가 있었지만 앞선 두 문장의 공통점처럼 재산을 일구는 재주는 없었다.

어린 시절 우리 집은 가난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버지와 함께한 삶이 찌든 때 같은 가난의 기억으로 점철된 것은 전혀 아니었다. 아버지는 많은 돈을 날렸고, 추가로 적지 않은 빚을 졌으며 이를 만회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그런 노력은 돈에 있지 않고 어떤 가치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본인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가족과 피해를 본 지인들을 위한 아버지의 발버둥을 나는 미안함과 책임감이라 이해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그 책임감은 아버지가 이르게 생을 마감하면서 완수됐다. 아버지는 100㏄ 오토바이를 타고 칼바람을 가르며 일주일에 2∼3번씩 30㎞ 남짓한 할머니 댁에 다녀오곤 했다.

21년 전 그날도 아버지는 연로한 부모에게 찬거리를 전하고 돌아오던 중 법규 위반 차량과 부딪혔다. 거나하게 술을 드시면 ‘불효자는 웁니다’라는 노래를 부르곤 했던 아버지는 의식을 잃었고 보름 뒤에는 울지도 못하는 불효자가 됐다. 사망보험금 등은 생전의 빚과 얼추 비슷해 가족을 제외한 이승의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은 어느 정도 털어놓고 가셨을 것이다.

아버지는 참 재주가 많았다. 그림을 잘 그려서 막노동 현장에서는 페인트칠이나 미장을 하시곤 했다. 기타, 아코디언, 하모니카를 잘 다룰 정도로 음악적 재능도 탁월했다.

다만 술을 드신 날에만 부르던 아버지의 노래는 너무 구슬퍼서 어린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학창 시절 월반을 두 차례 하셨다고 하니 공부도 잘하셨을 테고, 건축적 감각도 뛰어나 예전 살던 집도 직접 지으셨다. 어머니는 정반대인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나는 모계가 우성인 것으로 판명 났다.

아버지는 우리 형제에게 ‘피땀 흘려 성실히 일하라’는 가훈을 강조하셨다. 또 ‘콩 한 조각도 나눠 먹으라’며 우애의 중요성을 귀에 인이 박이도록 말씀하시곤 했다.

이해관계로 사람을 가르지 않으며 작은 손실에 연연하지 않고 사람을 먼저 챙기는 자세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셨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불현듯 아버지 생각이 날 때면 오랜 시간 함께하지 못한 애석함과 ‘이제는 저희 형제 믿고 편하게 사세요’라고 말할 수 없었던 어린 영혼의 진한 아쉬움이 교차한다. 아울러 아버지가 말과 행동으로 전해주신 선한 영향력을 우리 형제가 제대로 이어받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이 잇따른다.

나는 할아버지가 어떤 삶을 사셨는지는 잘 모르지만, 우리 아버지가 어떤 분이고 어떻게 사셨는지는 잘 안다. 그리고 내가 할아버지의 삶을 모르듯 내 자식이 이렇게 훌륭한 내 아버지의 삶을 잊은 채 살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래서 머잖아 아버지의 삶을 작은 책으로 정리하기를 소망한다.

‘누구도 아프게 안 했고, 그래서 가난한 내 아버지’에 이어지는 가사는 ‘아세요? 그건 제게 주시는 가장 큰 사랑이란 걸’이다. 그리고 ‘자랑스런 내 아버지’로 끝을 맺는다.

임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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