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칸서스 스피노수스(Acanthus spinosus). 1649년에서 1659년 사이에 작업한 책 ‘고토르퍼 코덱스(Gottorfer Codex)’에 실린 한스 사이먼 홀츠베커(Hans Simon Holtzbecker)의 그림.
아칸서스 스피노수스(Acanthus spinosus). 1649년에서 1659년 사이에 작업한 책 ‘고토르퍼 코덱스(Gottorfer Codex)’에 실린 한스 사이먼 홀츠베커(Hans Simon Holtzbecker)의 그림.

■ 박원순의 꽃의 문화사 - ② 아칸서스

건축가 칼리마코스 눈에 띄며 디자인에 영감… 짜임새 있는 문양으로 신전 기둥머리 등 장식
약효 뛰어나고 생명력도 질겨 12세기 북유럽 거쳐 세계로 퍼져… 정원 골격 잡는 기초 식물로 사랑받아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 코린트 마을에서 한 소녀가 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더니 끝내 죽음을 맞이했다. 그녀를 키우던 유모는 그녀가 생전 소중히 여기던 물건들을 어부용 바구니에 담아 그녀의 무덤 가까이에 두고 비바람을 막기 위해 무거운 타일로 덮어 뒀다. 건축가 칼리마코스(Callimachus)가 이 바구니를 발견한 것은 이듬해 봄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눈길을 끈 것은 이 바구니가 아닌 그 주변에 자라난 식물이었다.

그 가엾은 소녀의 무덤가에 놓인 바구니 바로 밑 땅속에는 아칸서스의 뿌리가 있었다. 지중해 지역에서 가장 오래 사는 초본성 여러해살이 식물 가운데 하나인 아칸서스는 땅속에 조그만 뿌리 조각만 남아 있어도 싹을 틔우고 땅속 깊숙이 곧은뿌리를 내리는 식물이다. 로제트 모양으로 자라는 잎은 바로 위에 놓인 바구니 옆면을 따라 바구니를 감싸 안는 모습으로 자라났다. 그리고 바구니를 덮어 놓은 사각형 타일에 닿자 더 이상 위로 자라지 못하고 잎 끝부분이 소용돌이 모양 또는 고사리 새순 모양으로 돌돌 감겼다. 이 모습은 그대로 아테네와 코린트 두 지역에서 활동했던 칼리마코스에 의해 우리에게 익숙한 고대 신전의 기둥머리를 장식하는 문양이 됐다.

코린트 양식으로 일컬어지게 된 이 디자인은 이보다 앞서 존재했던 도리아 양식, 이오니아 양식과 함께 그리스의 대표적인 건축 양식이다. 그리스 시대 초기에 발달한 도리아 양식이 단순하면서 중후한 느낌이었다면, 기원전 6∼7세기에 발달한 이오니아 양식은 더 우아하고 날씬한 느낌을 줬다. 아폴로 신전 내부의 기둥머리에서 처음 발견된 코린트 양식은 아칸서스 잎의 섬세한 아름다움을 모티브로 훨씬 더 디테일하고 생명력을 전해주는 가장 짜임새 있는 문양을 선보였다. 아칸서스는 식물을 모티브로 한 디자인의 원조 격인 셈이다. 그렇다면 무수히 많은 식물 가운데 이 식물이 서로 다른 다양한 문화와 종교, 국가를 초월해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살아남아 영향력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1540년에서 1560년 사이에 그려진 코린트 양식 기둥머리의 상세도.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자료.
1540년에서 1560년 사이에 그려진 코린트 양식 기둥머리의 상세도.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자료.

아칸서스는 여러모로 완벽한 식물이었다. 우선 약효가 뛰어나 항생제, 소염제, 진통제 등으로 널리 쓰여온 식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장수와 창조성, 우아함을 상징하기도 했다. 특히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잘 견디는 아칸서스는 인간의 삶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결국 그것은 지나가고 행복이 다시 찾아온다는 것을 의미했다. 여기에 외관까지 출중해 건축적인 조형미와 균형미를 갖췄으니, 칼리마코스 같은 디자이너가 이를 알아본 것은 어쩌면 우연이 아닌 필연적인 사건이었을지 모른다.

쥐꼬리망촛과에 속하는 아칸서스는 아시아와 지중해 연안의 열대, 아열대 지역에 널리 분포하며, 30종 정도가 알려져 있다. 그 가운데 그리스 남부 코린트 지역에서 칼리마코스에게 영감을 준 종은 아칸서스 스피노수스(Acanthus spinosus)로 추정된다. 이 종은 그리스 북부의 아칸서스 몰리스(A. mollis)보다 잎이 더 깊게 갈라지며 날씬하고 우아한 느낌을 주어 더욱더 드라마틱한 문양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건축물의 디자인 요소로 형상화된 잎은 사실 어떤 특정한 아칸서스 종을 정확하게 묘사했다기보다는 건축가의 상상력에 의해 양식화됐다) 아칸서스 잎은 가장자리의 뾰족뾰족한 톱니 모양이 엉겅퀴나 양귀비를 닮았지만, 구조적으로 완성도와 균일성이 높고 풍성하며 짙은 녹색으로 아주 고급스러운 광택이 난다.

무엇보다 압도적인 것은 크기다. 잎만 자란 상태에서 이미 폭과 높이가 60∼70㎝에 이를 수 있다. 여기에 늦은 봄부터 여름에 걸쳐 꽃대가 위로 곧게 솟아올라 꽃을 피우게 되면 60∼70㎝의 높이가 더 추가된다. 그래서 아칸서스에 꽃이 피면 그 자체로 하나의 조각상 같은 느낌이다. 밑에서부터 순차적으로 개화하는 아칸서스의 총상꽃차례는 몇 달에 걸쳐 지속되는 개화기 내내 벌들을 유혹한다. 아칸서스 꽃 하나하나는 호박벌 한 마리가 들어가 그 안에 있는 꽃꿀을 먹기에 딱 알맞은 크기다. 금어초를 닮은 하얀색 꽃은 위아래로 멋진 후드처럼 달린 아름다운 자줏빛 꽃받침으로 곤충들을 유혹한다. 그 아래쪽에는 마치 파리지옥의 잎처럼 가시 같은 모양의 거치가 있는 포엽이 있다. 이 식물을 공식적으로 처음 묘사한 린네에 따르면 속명인 아칸서스(Acanthus)는 ‘가시’(thorn)를 뜻하는 그리스어(akanthos)에서 유래했으며, 종명인 스피노수스(spinosus) 역시 가시가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칸서스의 잎과 포엽에 난 가시 모양은 억세고 배타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아름답고 우아한 자태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살짝 긴장감을 주는 구조적 매력을 발산한다.

그리스인들이 아칸서스에서 디자인적인 매력 요소를 발견한 건 꽃이 아니라 잎이었다. 뾰족한 잎이 돌돌 말리며 자라는 모습은 건축 디자인에 적용하기에 적합했다. 그 지역에 널리 자생하는 대표적인 식물들 가운데 무성하고 아름다운 잎을 가진 아칸서스는 분명히 눈에 띄는 존재였고,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그리스 언덕 곳곳에 자라는 야생 숲당귀(Angelica sylvestris) 줄기도 신전 기둥의 세로 홈 문양을 위한 모델이 되기도 했다. 수로나 배관 등 관개 시설이 아직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정원이 본격적으로 발달하지 못했던 그리스 시대에 이러한 식물들은 주로 야생에서 자라며, 신전과 원형극장 등 공공 건축물의 디자인에 영감을 줬다.

아칸서스 잎의 디테일한 아름다움이 본격적으로 표현된 것은 로마인들에 의해서였다. 특히 아우구스투스 시대(기원전 27년∼서기 14년)에는 웅장한 건물 기둥뿐 아니라 각종 몰딩, 부각, 보석 장식에 다양하게 적용됐다. 여기서 코린트 양식은 이오니아 양식과 결합된 혼합 양식으로 발전하며 제대로 빛을 발했다. 로마인들은 가늘고 흰 기둥 위에 무성한 아칸서스의 뾰족한 잎끝을 오므려 정교하게 다듬었다. 잎의 모양은 더 풍성하고 섬세하게 장식됐으며, 잎의 잔물결까지 세세하게 묘사해 극적인 움직임을 표현했다.

식물 그 자체로서의 아칸서스는 로마 시대 정원 화단 속에서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리스와 달리 거의 모든 주택에 정원이 딸려 있었던 로마에서는 다양한 꽃이 정원에 식재됐는데, 그중에는 아칸서스도 포함됐다. 로마 인근 라우렌티움에 위치했던 소(小)플리니우스(Pliny the Younger)의 빌라에는 갖가지 형상으로 다듬어진 회양목 토피어리들이 자라는 테라스 아래 아칸서스의 잎들이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물결이 매력적인 꽃들과 함께 인상적으로 펼쳐졌다. 이 정원에는 수레국화, 시클라멘, 크로커스, 로즈메리, 양귀비 같은 식물도 자라고 있었다.

비잔티움 제국을 거치며 아칸서스 문양은 뚜렷한 상징성 없이 다른 디자인을 뒷받침해주는 양식화된 형태로 쓰이다가 카롤링거 왕조 시대를 거치며 다시금 고전적 사실주의 형태로 부흥했다. 북유럽에서는 로마네스크 양식을 통해 더 자연주의적 형태로 변형됐고 나중엔 고딕 양식 건축을 통해 화려하게 사용됐다. 르네상스 시대에 고전적 아칸서스 문양은 건축뿐 아니라 비건축적 요소로도 확대됐는데, 특히 인쇄술의 발달로 대중화된 패턴 북을 통해 유럽 전역에 급속도로 확산됐다. 바로크 양식에서는 아칸서스 장식이 필수였다. 몰딩과 처마 돌림띠에 대대적으로 사용됐을 뿐만 아니라 루이 14세의 침실 서랍장 같은 가구 문양에도 쓰였다. 18세기 영국에서는 은 식기류, 촛대, 교회의 제단 집기류 장식에 쓰이기도 했다.

19세기에는 각종 제품의 대량 생산을 통해 아칸서스 문양이 저급한 디자인으로 남용됐는데, 미술 공예 운동을 주도한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는 고전의 아칸서스 문양과 실제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식물의 생태를 연구해 그 디자인을 다시금 환기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20세기 초에는 프랑스 유리 공예가 르네 랄리크(Rene Lalique)의 아미앵 꽃병과 같은 제품에 아칸서스 소용돌이 문양이 적용됐다.

지금까지 디자인 모티브로서 아칸서스의 역사를 살펴봤다면, 정원 식물로서 아칸서스는 어떻게 오늘날에 이르게 됐을까? 아칸서스는 서로마 제국의 멸망 후 로마의 폐허 속에서 자라다가 12세기 북유럽에 도입된 후 미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로 퍼져 나갔다. 아칸서스는 그 특유의 건축적 형태로 정원 화단의 골격을 잡아 주는 훌륭한 기초 식물이 돼 많은 정원에서 사랑받았다. 필자는 수년 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리버뱅크스 동물원에서 알락꼬리여우원숭이, 침팬지, 갈라파고스땅거북, 독수리, 앵무새를 차례로 구경하는 동안, 주변에 심어 놓은 아칸서스를 본 적이 있는데 마치 떼 지어 날아오르는 나방들처럼 높게 솟아오른 꽃들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아칸서스는 대표적인 저관리형 식물로 정원사들에게 인기였다. 정원에 처음 식재했을 때는 풍부한 유기질과 주기적인 관수가 필요하지만, 일단 뿌리가 활착된 다음에는 건조하고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 거의 관리가 필요하지 않다. 단, 토양 배수성만은 아주 좋아야 하는데, 특히 겨울철 차갑고 습한 토양에서는 뿌리가 썩어 고사하게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아칸서스는 반그늘에서도 잘 자라고 햇빛도 좋아하지만 무더운 여름에는 뜨거운 오후 햇빛을 피할 수 있는 곳이 좋다. 번식은 주로 땅속에서 왕성하게 뻗어 나가는 지하경을 분주해 개체를 늘린다. 씨앗으로도 번식이 가능하지만 파종 후 꽃이 피기까지는 수년이 걸린다. 오늘날엔 ‘필딩스 골드’(Fielding’s Gold)처럼 금빛 잎을 가진 품종, ‘화이트워터’(White water)와 같이 흰무늬 잎과 분홍빛이 도는 화사한 꽃을 가진 품종 등 다양한 아칸서스 품종이 개발돼 보다 섬세한 정원사들의 취향을 충족시켜 주고 있다.

아칸서스를 비롯한 많은 식물은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마음에 신령스러운 느낌, 또는 무언가 창조적 자극을 일으키는 영감의 원천이 돼 왔다. 우리 유전자 속에는 자연의 무수히 많은 패턴을 인식하고 그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미적 감각이 내재돼 있다. 매 순간 새로운 것들로 변화무쌍한 현대 사회의 다양성 속에서 자연은 지금까지 그래 왔듯 앞으로도 우리에게 끊임없는 영감의 메시지를 줄 것이다. 단, 그 전제 조건은 고대의 식물들을 비롯한 가능한 한 많은 다양한 식물이 인간과 함께 공존하며 지구의 건강한 생태 환경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국립세종수목원 전시기획운영실장


■ 아칸서스 스피노수스(Acanthus spinosus)

쥐꼬리망촛과에 속하는 다년생 초본 식물로, 지중해 연안과 아시아 지역에 30종 정도가 분포한다. 고대 그리스 코린트 양식의 기둥머리 문양의 모델이 된 식물로 유명하다. 이 종은 아칸서스 몰리스(A. mollis)와 함께 여러 디자인의 모티브가 됐고, 정원 식물로 각광을 받아 왔다. 겨울철 온도가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월동하며, 개화는 늦봄부터 시작해 여름 내내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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