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홍순태 선생님은 서울 조계사 입구에서 옻칠공방을 운영하셨던 분입니다. 1916년 강원 횡성에서 태어나 13세 때 서울로 상경, 당시 이왕가 미술제작소 출신 이원구 님에게 옻칠을 사사해 일흔여덟 나이에 돌아가실 때까지 65년을 오로지 옻칠과 함께하신 분입니다. 1979년 제가 활동하고 있는 (사)한국나전칠기보호육성회 고문으로 모셨으며 1988년 4월 서울시무형문화재 제1호 옻칠장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신 분입니다.
제가 이분을 가장 존경하는 이유는 살아생전 이분의 활동 때문입니다. 교통사고로 한쪽 발을 심하게 다쳐 돌아가실 때까지 목발을 짚고 다니셨습니다. 그런데도 항상 업계를 위해 묵묵히 활동하셨습니다.
그중에서도 나전칠기계의 관혼상제 즉, 나전칠기인들이 돌아가시거나 그분들의 자제들이 결혼식을 하게 되면 부고장이나 청첩장 수십 장을 들고 직접 관련 친지들이나 업계 지도자급 인사들을 찾아다니면서 전달하곤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러다 보니 청첩장이나 부고장을 받은 분들은 불참할 수가 없어 상가나 예식장이 항상 사람들로 붐볐던 것이 엊그제 같습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업계의 어려움은 늘 있어 홍 선생님을 뵙게 될 때마다 죽는소리를 하면 “아, 이 사람들아. 우리는 6·25전쟁 때도 소반을 만들어 팔아서 먹고살았어. 이 정도 어려운 걸 가지고 뭘 그러나” 하며 역정을 내시곤 했습니다.
당시 업계에선 나전칠기 공예품이나 가구류를 만들 때 옻칠이 아닌 캐슈칠을 했는데 이분은 평생 옻칠만 하셨습니다. 관광 붐을 타고 일본인들이 많이 내한하고 옻칠 공예품을 찾아 공방을 방문할 때면 “선생님, 이 친구들이 옻칠을 배우고 싶어 합니다. 좀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이에 아무런 응답이 없으시다가 갑자기 불편한 몸을 일으켜 공구 상자 쪽으로 가셔서는 옻칠 붓과 옻칠 붓을 깎는 구두칼을 들고 오시더니 “칠장이는 이 붓과 이 칼을 세 개 정도씩 닳아 없어질 때까지 인내심이 있어야 하는데 해보겠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방문했던 젊은이들은 서로 얼굴만 바라보다 그냥 나왔는데 밖에 나와 “무슨 영감이 저래? 옻칠 비법은 말도 하지 않고…”라며 얘기했습니다. 선생님은 옻칠을 배우기 전에 인내심부터 키우라는 의미로 그리 말씀을 했는데 이들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던 겁니다.
1994년 돌아가신 후 저는 그분의 묘비에 ‘홍순태 님은 평생 옻칠과 함께하시다가 옻칠공방에서 사망하시다’라고 써서 조각한 오석 비석을 세웠고 현재는 경기안성공원 묘지에서 편히 쉬고 계십니다.
이칠용 근대황실공예문화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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