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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식의 과학으로 본 마음 - (19) 암묵적 지식

음식점서 이상하게 들리는 “기생충 둘이요”… 영화관선 이상하지 않은 건 무의식적 지식 때문
운동 기술·악기 연주도 암묵적 지식에 의존… 말로 표현 어려워 의식적 지식이 되레 방해


우리는 누구나 지식(知識)을 갖고 있다. 비록 그 지식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이야기할 수 없다고 해도 어떤 형태로든 지식을 갖고 있으며 그것을 사용한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니, 지식(knowledge)이란 “1. 어떤 대상에 대하여 배우거나 실천을 통하여 알게 된 명확한 인식이나 이해, 2. 알고 있는 내용이나 사물” 등으로 정의하고 있다.

나와 세상에 대한 지식은 어떤 방식으로 표상될까? 그동안 배우고 경험해서 쌓은 지식이 우리 마음속에 어떤 형태로 저장되고 조직화돼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인지심리학자들은 인간의 기억과 언어, 지각, 범주화 판단 등을 통해 다양한 연구를 수행해 왔다. 우리는 자신과 자신의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는지를 알고 있고(사건 지식), 일 년이 열두 달이고 하루에는 낮과 밤이 있으며 낮과 밤의 의미도 알고 있다(의미 혹은 사실 지식). 이런 지식은 일반적으로 의식적으로 인식 가능해 인지심리학에서는 ‘명시적(explicit) 지식’이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명시적 지식은 언어적으로 표현 가능해, 언어를 통해 우리는 서로의 생각이나 감정을 주고받아 왔고, 그래서 언어는 마음의 구조와 과정을 연구하는 많은 인지심리학자의 주요 연구 주제가 돼 왔다.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세상을 이해하고 그 지식을 어떻게 저장하고 사용하는지를 언어의 의미와 통사(syntax·의미 있는 단어들이 정렬되는 방식), 다양한 맥락에서 사용되는 대화 방식 등을 연구한다.

여러분이 이 글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것도 단어의 개념이나 의미에 대한 지식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순한 단어의 의미에 대한 지식을 넘어서 대부분의 일상 대화는 화자와 청자의 세상에 대한 다양한 지식과 암묵적인 약속을 내포하고 있다. 식당으로 들어오는 두 사람을 보고, “기생충 둘이요”라는 말은 공격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영화매표소에서 얘기할 때는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다. 친구에게 전화로 “오늘 신촌 지하철역 1번 출구에서 6시에 만나서 같이 저녁이나 먹자”고 얘기했을 때 친구가 “그래, 좋다”고 대답하는 간단한 대화에도 두 사람은 서로에게 필요한 많은 지식이 있음을 가정하고 있다. 즉, 이 두 사람은 적어도 상대방이 서울에 지하철이 있고, 신촌역이 어디에 있고, 각자 알아서 약속 장소에 올 수 있고, 1번 출구에 바로 저녁 식사가 마련돼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론가 근처 식당에 가서 음식을 골라 주문을 하고, 식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안부도 묻고 흥밋거리도 얘기하면서 시간을 같이 보내고 음식값도 식당 주인에게 지불한다는 정도는 알고 있다고 가정한다. 물론 옷도 입고 신발도 신고 와야 한다. 이런 얘기까지 하지 않는 이유는 우리에게 그런 ‘기본적’ 지식이 있고, 또 서로에게 그런 지식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오히려 ‘당연한’ 것을 말하는 것은 일종의 암묵적 계약을 깨는 행위가 돼, 웃자고 하는 얘기가 아니라면 상대방을 달리 생각하게 만들 수도 있다.

예전에 기자를 하던 친구가 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친구가 선배 기자의 일을 대신 해 줬더니 선배가 고맙다면서 소주 한잔 사주겠다고 해서 따라갔다고 했다. 그런데 그 선배는 근처 구멍가게에 가서 소주 한 병을 사서는 그 자리에서 맥주 컵에 소주 한 잔을 따라 친구에게 마시라고 줬다는 것이다. 정말 소주 한잔 사준 것이다. 이 얘기가 재미있거나 혹은 당황스럽게 생각된다면 그것은 그 선배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소주 한잔 산다’는 의미와는 다른 지식을 갖고 있거나 혹은 그것을 달리 이용했기 때문이다.

남편에게 “아기 좀 봐 줘”라고 했더니 정말 남편이 다른 일은 안 하고 아기만 뚫어지게 보고만 있더라는 우스개 얘기처럼, 인간처럼 움직일 수 있고 인간이 사용하는 모든 단어의 의미와 문법을 모두 알고 있는 최첨단 로봇이라고 해도 인간이 갖고 있는 상황적, 맥락적 지식이 없다면 대화는 끔찍한 일이 될 수밖에 없다. “식빵에 버터와 딸기 잼을 발라서 우유와 함께 가져다주면 좋겠다”라는 간단한 요구를 이 로봇에게 처음 하려면 엄청나게 복잡한 명령어가 필요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로봇은 식빵 전체에 엄청난 양의 버터와 잼을 발라서 우유에 빠뜨려 가져올 수도 있다.(각종 서류와 책, 펜, 간식, 휴지 등이 어지럽혀져 있는 책상을 정리해 달라는 명령은 어떻게 해야 할까? 행동 하나하나를 구체적으로 로봇에게 말하고 시키느니 그냥 본인이 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처럼 대화가 가능하려면 언어 지식뿐 아니라 세상에 대한 지식과 구조가 인간과 유사해야 하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지식(가령 감각이나 운동 지식)도 갖추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여러분 앞에서 서너 살 된 귀여운 아기가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고 하자. 그 아이에게 “너 몇 살이니? 아이스크림 맛있니?”라고 여러분이 묻는다고 생각하고 한번 말을 해 보라.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말했는지 다시 생각해 보라. 아마도 여러분은 평상시에 성인들에게 말하는 음정(tone)보다 훨씬 높여서 말하고 있음을 깨달을 것이다. 우리는 어린아이에게 말을 할 때 높은 음정으로 말하라는 것을 배운 적도 없고 또 본인도 그렇게 해야겠다고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말을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암묵적 지식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인지심리학 연구는 ‘어떤 대상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나 이해’라는 사전적 정의의 지식 말고도, 전혀 본인은 인식하거나 이해하지 못하지만 마음속에 저장(기억)해 잘 사용하고 있는 지식의 중요성을 밝혀왔다. 이러한 무의식적 지식을 인지심리학자들은 ‘암묵적(implicit) 지식’이라고 부른다. 특히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도 암묵적 지식의 역할은 지대하다.

지금 독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암묵적 지식은 무엇일까? 아마도 이 글을 읽으면서 사용하는 우리말의 문법 지식일 것이다. 우리는 학창시절 선생님으로부터 무엇이 주어이고 목적어인지, 어떤 단어가 명사나 동사인지 혹은 부사인지 배웠고 여러 유형의 문장 구조와 그 규칙들을 외웠다. 하지만 여러분이 이 글을 읽으면서 사용하는 문법 지식은 예전에 암기했던 문법에 대한 명시적 지식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익혀온 무의식적인 문법 지식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우리가 문법을 배우기 전에도 대부분 문법적으로 올바른 문장을 말하고 사용해 왔다는 점이다. 국문법을 전혀 배운 적 없는 초등학생들도 문법에 대한 암묵적 지식을 갖고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영문법을 전혀 배운 적 없는 영미 사람들도 문법적으로 잘못된 영어를 접하면 금방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챈다.

어려서부터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에서 단어의 뜻과 철자 등은 의식적 지식으로 저장되지만 단어들이 배열되는 방식(통사)이나 규칙 등의 지식은 무의식적으로 저장돼 사용된다. 즉, 우리가 실제로 사용하는 언어에는 의미와 통사라는 큰 요소가 있고, 각각은 의식적 지식이나 암묵적 지식으로 저장돼 사용되는 것이다.

암묵적 지식에는 문법 외에도 수영이나 골프 등 운동 기술의 습득, 피아노나 바이올린 등 악기 연주를 배우는 것도 포함된다. 운전하거나 심지어 단순히 운동화 끈을 매는 것 역시 암묵적 지식에 해당한다. 의식적 지식이 말로 쉽게 표현될 수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암묵적 지식은 말로 표현하는 것이 어렵고 그것을 의식적으로 이해했다고 해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세계적인 골프선수가 쓴 ‘골프 치는 법’을 모두 외워서 완벽한 의식적 지식을 갖고 있다고 해서 바로 골프를 잘 치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악기 연주 역시 많은 부분이 암묵적 지식에 의존한다. 건반을 치고 현을 켜는 과정에서 습득된 움직임은 암묵적인 지식으로 저장되고 사용된다. 운동 기술 역시 대표적인 암묵적 지식이다. 의미나 사실에 대한 지식이 무엇(what)에 대한 지식이라면, 운동 기술은 어떻게(how)와 관련된 지식으로 ‘절차(procedural) 지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운동기술이나 악기 연주와 같은 암묵적 지식을 사용할 때, 의식적 지식은 오히려 방해를 줄 수 있다. 가령, 2008년 미국과 영국의 심리학자인 플리갈과 앤더슨(Flegal & Anderson)이 수행한 연구에서, 골프 선수가 자신이 퍼팅을 어떻게 할 것이라고 의식적으로 표현하는 경우, 그렇지 않을 때와 비교해서 훨씬 더 퍼팅 수가 늘어나는 것을 보고했다. 운동 수행에서 의식적으로 많은 생각을 하는 것이 오히려 방해를 준 것이다. 물론 골프에 서투른 초보자의 경우는 의식적으로 표현하나 그렇지 않으나 퍼팅 수는 모두 비슷하게 많았는데, 의식이 방해할만한 암묵적 지식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암묵적 지식은 언어를 통해 쉽게 전달되지 않는다. 직접 수행하게 하고, 들려주고, 보여주고, 느끼고, 경험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암묵적 지식은 학습자 본인이 끊임없이 연습하고 더 나은 수행이 나올 때까지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중년을 넘어서면 우리의 인지 기능 중 일부는 스스로 자각할 수 있을 정도로 저하되기도 하는데, 그중 하나가 의식적인 기억 능력이다.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특히 새로운 용어나 이름, 지명 등 고유명사를 기억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

얼마 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행사에서 자신이 임명한 국방장관의 이름을 기억해 내지 못해 애를 먹었다는 뉴스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필자 역시 자주 보는 학생의 이름이 갑자기 생각나지 않아 당황했던 적이 있는데, 50·60대 이상이면 이런 경험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비록 강의 중에 어떤 대명사나 단어들이 순간적으로 떠오르지 않아 애를 먹을 수는 있어도, 갑자기 문법이 생각나지 않아서 단어들을 뒤죽박죽 늘어놓는 노교수가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다행히 우리의 문법적 지식은 무의식적으로 저장돼 의식적 노력 없이도 자동적으로 이용되고, 더욱 다행히도 노화에 따른 영향도 거의 받지 않기 때문이다.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 용어설명

암묵적 지식(Implicit knowledge) : ‘어떤 대상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나 이해’를 뜻하는 ‘명시적 지식(Explicit knowledge)’과 달리, 자신은 전혀 인식하거나 이해하지 못하지만 마음속에 저장해 사용하고 있는 무의식적 지식을 말한다. 명시적 지식뿐 아니라 이런 암묵적 지식 덕분에 인간은 언어생활을 하고 각종 기술을 배워 일상을 영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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