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규 논설위원

지금도 막걸리를 보면 그 아이 ‘걸구’가 생각난다. 40년 전, 속리산 문장대로 가는 초입의 야트막한 언덕배기에 자리한 주막집의 잔심부름꾼…. 열대여섯 살쯤 됐을까. 해맑은 미소에서 어리숙한 순진함이 묻어나는 깡마른 소년이었다. 손님이 주문하면 재바르게 집 뒤를 흐르는 계곡으로 달려가 물속에 담가둔 술병을 들고 와서는 술상 앞으로 내민다. 그러면서 “마마마ㅁ마막 막걸리요” 한다. ‘막’이란 첫음절이 완성되기까지 한참이 걸린다. 말을 더듬는 구어(口語)장애를 앓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 여름 걸구의 막걸리는 참으로 시원했다.

구음장애라고도 하는 구어장애는 정신적 스트레스나 신경 손상, 마비 또는 근육의 경직 따위로 인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언어장애를 딛고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인물도 있다. 조선 시대 서예가 조광진(1772∼1840)이 대표적이다. 추사 김정희는 ‘일찍이 압록강 이동에는 없었다’고 그의 글씨를 극찬했다. 그는 말더듬이 심했다. 그래서 스스로 호를 ‘눌인(訥人)’이라고 했다. 말 더듬는 걸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말 더듬을 눌(訥) 자는 ‘말(言)이 안(內)에 있어 나오기 어렵다’는 뜻을 가진 회의문자다. 말이 어눌한 사람을 우리말로는 말더듬이 또는 더더리라고 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더듬바리니 떼떼바리라고 하기도 한다. 일본어로는 도모리(どもり)라 하고, 중국어로는 커우츠(口吃) 또는 제바(結巴)라고 한다. 어눌하다나 말더듬이 같은 말은 자신에게 사용하는 건 괜찮지만, 남에게 사용해서는 안 된다. 장애인을 비하하는 말이자 인격을 훼손하는 용어이기 때문이다.

지난 16일, 북한 김여정이 한·미 연합훈련을 비난하면서 ‘판별능력마저 완전히 상실한 떼떼’라느니 철면피, 미친개 등의 상말로 우리 정부 당국자를 비난하는 담화를 내놨다. 1월 13일 특등머저리란 비속어에 이어 나온 떼떼는 ‘말 더듬는 바보’라는 뜻을 가진 방언이다. 특히, 북한이 1980년대에 제작·방영한 TV 극에서 말을 많이 더듬는 국군 병사를 떼떼라고 놀려댄 이후 주민들 사이에서도 널리 쓰이는 말이라고 한다. 인격 비하 용어까지 동원해 대남 적개심을 부추기는 선동술이다. 그래도 ‘특등머저리’들은 대꾸 한마디 않는다.
황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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