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아침 바꾼 ‘영국 빵’
19세기 빵 절단기 발명되자
에디슨도 나서 토스터 고안
샌드위치·산밍치·멘보샤…
식재료 따라 활용 무궁무진
계란부침·햄·양배추 등 넣은
한국식 토스트, 공복 채워줘
식빵(Loaf bread). 고작 빵 한 덩어리에 별반 무슨 얘깃거리가 있을까 하겠지만, 우리 모두에게 친숙한 이 빵은 세상의 아침을 바꾼 음식이다. 산업혁명 이후 변화한 삶의 중심엔 늘 식빵이 있었다.
식빵은 이름처럼 ‘밥처럼 먹는 빵’이다. 일본에 서양의 빵 문화가 막 전해진 무렵, 달달한 카스텔라나 크림빵, 케이크 등 빵은 간식이나 디저트로 취급했다. 그 와중에 유일하게 주식처럼 상식하는 ‘밥빵’이라고 해서 식빵이란 이름을 붙였다. 일명 ‘쇼쿠팡(食パン)’이다. 그 이름 그대로 국내에 전해졌다.
밀가루, 소금, 효모를 물에 반죽해 구운 식빵은 원래 영국에서 유래했다. 그래서 자국의 빵 문화를 과시하는 프랑스에선 특히나 식빵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원래 프랑스인은 대대로 영국인에게 ‘맛없는 음식을 먹는 나라’라고 놀려왔다) 그래서 식빵에 우유와 계란옷을 입혀 다시 구워낸 ‘프렌치토스트’로 재해석(?)해 먹는다.
하지만 프랑스인의 멸시와는 달리 ‘영국 빵’은 금세 널리 퍼져나갔다. 미국으로 건너간 식빵은 19세기 들어 온 세상을 강타한 산업화의 발 빠른 전개에 힘입어 가장 보편적인 식재료가 됐다. 빨리 아침 식사를 마치고 현장으로 출근해야 하는 이들에겐 최고의 음식이었다. 저장도, 요리도 편리했던 덕분이다. 발명가들도 나섰다. 1912년 식빵을 편리하게 자르는 자동절단기가 보석가공업자 오토 로웨더에 의해 발명됐고 이어 1919년엔 자동 토스터까지 세상에 나왔다.(그 형태나 원리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유명한 토머스 에디슨도 몇 종류의 토스터를 고안했을 정도로 전기 토스터는 인기를 끌었다. 절단기와 토스터는 당시 주부들의 가사부담을 획기적으로 덜어줬고, 식빵과 한 세트로 세상의 아침 문화를 바꿨다. 오죽하면 미국에는 뭔가 획기적인 신기술이 등장할 때 “자른 식빵 이후 최고의 발명품(the greatest thing since sliced bread)”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식빵은 밥빵이니만큼 활용도가 무지 높다. 토스터에 굽거나, 굽지 않고 그대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는다. 잼과 케첩, 버터 등을 바르거나 훈제육류, 치즈, 채소를 끼워 먹어도 된다. 빵 조각 위에 모든 식재료를 얹기만 하면 요리가 된다. 아무것도 없이 빵만 뜯어 먹어도 충분하다. 얼마나 인류의 범용 식재료가 됐냐면, 전 세계 대부분의 호텔 조식 뷔페에 어김없이 식빵과 토스터가 비치돼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된다.
미국에서 전기 토스터가 발명된 후에도 식빵 종주국 영국에선 프라이팬에 빵을 굽는다. 베이컨을 구운 후 흘러나온 기름에 계란을 부치고 마지막에 식빵을 올려 한 면만 구워 먹는다. 영국 뉴캐슬 출신 가수 스팅의 히트곡 ‘뉴욕의 영국인(Englishman in New York)’에는 첫 소절부터 “난 커피 대신 차를 마시고 토스트는 한쪽 면만 구운 것을 좋아하지”란 가사로 단호히 영국인의 취향을 못 박아두고 있다.
서울 도심 전철역 앞 토스트 노점은 대한민국 회사원의 든든한 아침을 책임진다. 한국식 토스트는 외국 것보다 좀 더 푸짐하다. 토스터에 굽지 않고 번철에 기름을 두른 후 직접 굽는 방식이라 더욱 정성이 들어 간다. 계란과 햄을 부치고 채 썬 양배추와 치즈를 끼워 먹는다. 원래 토스트는 한 장이니 한국식 토스트는 차라리 샌드위치, 그중에서도 구워낸 크로크무슈(croque monsieur)에 가깝다. 이 아침 토스트는 회사원의 공복을 책임지며 대한민국 경제의 일부를 지탱해왔다.
‘샌드위치’를 말하자면 억울해할 만한 사람이 한 명 있다. 18세기 중반에 살았던 영국의 존 몬터규 샌드위치 백작이다. 평소 카드놀이를 좋아하던 그는 게임 중 식사할 시간을 아끼려 손에 들고 먹을 수 있는 간편식을 고안했는데 그래서 그 음식에 샌드위치란 이름이 붙었다는 것. 이 얘기가 널리 퍼지며 존 몬터규 샌드위치는 졸지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도박중독자’가 돼버렸다. 하지만 정작 그는 영국 해군성 장관과 국무장관을 지냈을 만큼 다재다능한 군인이자 정치가였다. 존 몬터규는 카드놀이가 아닌 업무에 몰두하느라 빵에 고기와 채소를 끼워달라고 주문했다는 새로운 사실이 훗날 밝혀졌지만 이미 전 세계에 ‘카드놀이 중독자’로 퍼져나간 후였다. 아무튼 샌드위치는 가장 간편한 음식, 패스트푸드, 피크닉 음식의 대명사가 됐다. 햄버거도 결국 샌드위치의 한 종류일 뿐이다. 파티에 주로 나오는 핑거푸드 중 트라메치니(tramezzini) 역시 샌드위치의 축소형이다.
샌드위치는 온도에 따라 핫과 콜드 2종류로 구분한다. 또 빵의 개수에 따라 오픈 샌드위치와 클로즈드 샌드위치로 나뉘며 아예 빈틈없이 가장자리를 막아버린 것은 따로 포켓 샌드위치라 부른다. 뜨거운 철판으로 누른 이탈리아의 파니니가 바로 포켓 형태다. 이외에도 샌드위치를 바삭하게 구워낸 것을 프랑스에선 크로크무슈라고 부른다.(맥도날드에선 프랑스 판으로 크로크맥도를 출시한 바 있다) 바게트와 하몽을 쓰는 스페인의 보카디요(bocadillo de jamon)를 비롯해 중국 광둥(廣東)에선 고기를 끼운 빵 주파바오(猪배包), 베트남에선 바게트 형태 빵에 재료를 끼워 넣은 바인미(banh mi), 노르웨이는 빵 한 장짜리 오픈 샌드위치 스뫼르레브뢰(smørrebrød) 등 나라별로 저마다의 샌드위치 문화를 발전시켰다. 대만과 싱가포르에선 잼과 연유를 바르고 치즈와 햄을 끼워 넣은 산밍치(三明治)가 인기다.
식빵은 버릴 것도 없다. 구워낸 빵의 테두리 부분은 크러스트라 부르는데 의외로 이 부분을 좋아하는 이도 많다. 향이 진하고 고소한 맛 때문에 따로 튀겨 먹는 러스크란 과자도 있다. 일본에서도 식빵의 귀(食パンの耳)라 부르며 스낵으로 판다. 19세기 중국인은 이 근사한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자마자 이를 이용한 중식 메뉴를 고안했다. 바로 멘보샤(面包蝦)다. 식빵 사이에 다진 새우살을 넣고 단번에 튀겨낸 요리로, 바삭한 한입 크기 식빵 사이에 향긋한 새우살이 씹힌다. 누구도 싫어하기 어려운 맛이다. 일종의 새우 샌드위치 튀김이다. 식빵의 활용이 얼마나 무궁무진한지 하나하나 꼽아보면 실로 놀랍다. 외딴곳에 거주하는 이들의 비상식량, 목탄화를 그리는 화가의 지우개 용도, 곱창집 번철의 기름 빨아들이는 용도….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먹을까
△아침 토스트
△밤식빵
리치몬드제과점. 누가 처음 식빵에 밤을 조려 넣을 생각을 했을까. 이 집이다. 1979년 창업해 서부지역 대표 베이커리 노포의 아성을 지켜오는 곳이다. 수백 종의 상품 중 시그니처가 밤식빵이다. 누릇누릇 잘 구워낸 겉면엔 아몬드칩이 다닥다닥 붙었고 부드럽고 성긴 속살에는 달달한 밤 알갱이가 쑥쑥 박혔다. 종로 카페 뎀셀브즈에서도 아예 ‘리치몬드’라 못 박고 빵과 디저트류를 판매한다. 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 86. 8600원.
△무아르토마토파스타
세시파스타. 식빵 얘기하는데 웬 파스타집일까. 이탈리안 파네파스타(빵에 파스타를 넣은 것)를 내세우는 집이라 그렇다. 직접 구워낸 식빵을 통째로 사용한다. 발효 식빵의 속을 파내고 마치 파스타 면발과 소스가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듯 장식해 식탁에 올린다. 소스에 적신 빵을 조금씩 뜯어 파스타와 함께 맛보면 미각도, 포만감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다. 서울 서초구 효령로 23. 1만6000원.
△멘보샤
연교. 과거부터 ‘면보햐’란 이름으로 중국집 메뉴판에 있었지만 잘 몰랐다가 이제 와서 너무나 유명해진 메뉴다. 중국어 멘바오(面包)는 빵을 뜻하고 샤(蝦)는 새우다. 빵 사이에 새우를 다져 채우고 그걸 다시 튀겨낸 것이니 얼마나 맛있겠나. 멘보샤의 인기는 21세기 대한민국의 중국집 회식과 술자리 열풍을 견인하고 있다. 본래 샤오룽바오(小籠飽)가 유명한 곳인데 멘보샤도 맛있다. 마포구 연희로1길 65 1층. 1만 원.
△수박식빵
따순기미. 식빵이 네모난 수박 형태다. 향도 맛도 그렇다. 겉은 녹색, 속은 붉은 색과 흰색이 있어 정말 수박을 닮았다. 습관처럼 껍데기 부분을 버릴 뻔했다. 향도 좋고 식빵의 담백한 맛도 함께 살았다. 색은 수박 농축액과 녹차, 우유 등으로 냈고 씨는 초콜릿을 박았다. 김경오 파티시에가 오븐을 책임지는 따순기미에는 과일, 채소의 원 형태와 맛을 살린 창의적 제품이 많다. 경기 파주시 동패로 63번길33. 7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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