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동부에서 서쪽으로 펼쳐지는 대평원은 중부를 거쳐 로키산맥까지 이어진다. 대평원과 로키산맥이 만나는 지역이 콜로라도주이고, 로키산맥의 첫 산이 시작되는 지점에 볼더(Boulder)라는 인구 10만 명의 작은 도시가 있다. 볼더는 미국인들이 한 번씩은 꼭 가고 싶어 하는 곳이다.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오즈가 이 세상에 있다면 그곳은 볼더”라는 말도 있다. 해발 1633m의 ‘마일 하이’에 1년 중 300일 이상 맑아 쾌적하다. 루슨트 테크놀로지·선마이크로시스템 등 미국의 대표적 정보기술(IT) 업체들이 탄생했고, 최근에는 바이오 벤처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월스트리트에서 큰돈을 번 젊은 억만장자들이 여생을 보내기 위해 가족과 함께 옮겨오기도 한다. 1991년 로스앤젤레스 흑인 폭동 이후에는 교포들이 볼더 인근 오로라 지역으로 대거 이주하기도 했다.
볼더는 기본적으로 대학 도시다. 로키산맥 첫 산의 이름이 플랫 아이언인데, 그 산 아래로 미국 내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콜로라도주립대의 캠퍼스가 자리 잡고 있다. 콜로라도는 인디언 말로 붉은 땅이라는 뜻이다. 지금은 산맥이지만, 오래전에 바다였기 때문에 땅과 돌이 산화돼 붉은색을 띠고 있다. 그 붉은 돌로 캠퍼스를 지었다. 이 학교는 노벨상 수상자를 7명이나 배출하는 등 학문적 평판도 높지만 주말이나 방학, 휴가철에는 학생들이 미친 듯이 노는 ‘파티 스쿨’로도 유명하다. 도시의 중심인 학교의 영향을 받아 볼더 전체가 아름답고, 평화롭고, 똑똑하고, 안전한 곳으로 미국인들에게 인식돼 왔다.
그런 볼더에서 피를 부르는 총성이 울리고 말았다. 콜로라도주립대 캠퍼스 동남쪽에 위치한 식료품점 ‘킹 수퍼스’에서 소총 수십 발이 난사돼 10명이 사망한 사건이 22일 발생한 것이다. 미국 전역에서 월마트·타깃 등 대형 유통 체인이 상권을 독점하지만, 볼더에서는 킹 수퍼스가 주민과 학생들의 사랑방 역할을 해왔다. 날마다 학생들이 생활용품과 학용품, 먹거리, 연인에게 줄 꽃을 사기 위해 몰렸다.
볼더시 당국은 안전을 위해 학교 주변에서 총기를 규제해왔고, 2018년에는 소총 소유를 금지하는 규정을 제정했지만, 콜로라도주 법원은 해당 규정이 위법이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이 세상의 낙원 하나가 또 사라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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