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조 시장경제와민주주의연구소 이사장

거래가 폭등에 투기 불안 확산
가치 저장과 지불 수단 부적절
반대로 국제통화 전망도 등장

법정통화의 가치 불안이 동력
변동성도 대부분 외부 요인 탓
新화폐 요구 갈수록 확산할 것


16세기 중반 터키로부터 서유럽에 처음 전해진 튤립은 그 희귀성과 이국적 아름다움 때문에 무역으로 황금기를 맞은 17세기 네덜란드의 부유층 사이에서 성공을 과시하는 소품으로 인기가 높았다. 백합과 식물인 튤립 사랑은 점차 중산층으로 퍼져나가 1630년대에는 네덜란드 주요 도시마다 튤립 거래소가 생겼다. 인기와 더불어 가격도 서서히 오르기 시작했다. 1636년 11월부터 가격은 가파르게 상승했다. 급기야 1637년 1월 한 달에 튤립 가격이 20배나 뛰어오르는 폭등 장이 벌어졌다.

튤립 가격이 치솟으면서 온 나라가 투기 열풍에 휩싸였다. 시세가 더는 오르지 않으리라 예상하고 튤립을 팔아넘겼던 사람들도 더 높은 거래 가격이 형성되는 것을 보고선 다시 더 비싼 값에 튤립을 사들였다. 서민들까지 빚을 끌어서 투자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집단적 망상에서 빠져나오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2월 3일 최고점을 찍었던 튤립 가격은 급전직하했다. 무리하게 투기 거래에 나선 소시민들은 파산으로 내몰렸다.

지난 1년간 비트코인의 거래 가격이 급등하면서 적지 않은 사람 사이에서 비트코인 열풍이 21세기판 튤립 광란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변동성이 커서 가치 저장 수단이 되기 어렵고, 지불 수단으로 사용하는 데도 적당치 않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암호화폐는 화폐라기보다는 투기성 자산이기 때문에 조만간 튤립 신세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남태평양의 얍 섬에서 수백 년 사용돼 온 통화 시스템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미국 오리건대 인류학 교수 스콧 피츠패트릭에 따르면, 얍 섬의 주민들은 1400년에서 1900년 사이에 ‘라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종유석 원판을 지불 수단으로 사용했다. 크고 무거운 데다 쉽게 깨지기 때문에 이 돌은 일단 한 곳에 설치하고 나면 다시 옮길 수도 없었다. 이쯤 되면 화폐로서는 거의 쓸모가 없을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지역공동체가 누가 어디의 돌을 소유하고 있는지 그 장부를 공동의 기억 속에 너무도 잘 유지했기 때문에 피츠패트릭은 라이를 고대판 블록체인(비트코인에 사용되는 인증 기술)이라고 결론지었다.

라이와 비트코인 사이에는 흥미로운 유사점이 존재한다. 첫째, 라이의 가치는, 비트코인처럼 공급의 희귀성에 있었다. 비트코인 채굴이 엄청난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라이도 얻기 매우 힘들었다. 이 대형 종유석 원판은 400㎞나 떨어진 팔라우에서 캐서 난바다를 거쳐 옮겨야 했다.

다른 하나의 유사점은 공동체의 신뢰 덕분에 라이가 기능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모든 통화 체제가 신뢰를 필요로 하지만, 통치자나 제도에 대한 ‘수직적 신뢰’에 의존하는 법정통화와 달리, 라이를 뒷받침한 신뢰는 수평적이었다. 모든 구성원이 다른 사람들도 ‘구두(口頭) 장부’를 존중할 것이라고 믿었다. 비트코인도 다중이 공유하는 신뢰에 기반한다. 사람들이 컴퓨터 코드의 안전성을 믿을 때만 작동한다. 만약 해킹 등으로 이러한 믿음이 붕괴하면 비트코인은 돌덩이 라이보다도 가치가 없게 된다. 하지만 블록체인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고 있다는 징후는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점점 더 많은 기관이 비트코인의 편입이나 취급을 늘리고 있다. 씨티은행은 고객들에게 비트코인이 이제 ‘변곡점’에 이르렀으며, 언젠가 ‘국제무역을 위한 일급 통화’가 될 수도 있다고까지 했다. 이런 믿음이 있는 한 비트코인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사실 비트코인을 결제 수단으로 쓰기 편리하게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다. 변동성을 문제 삼지만, 원인의 상당 부분은 외부에서 비롯한다. 투기자산 운운하는 발언이 있을 때마다 몇천 달러씩 값이 내려간다. 가격 상승도 중앙은행들이 마구 돈을 찍어내 법정통화의 가치 안정성이 의심스럽게 된 탓이 크다. 암호화폐로 기우는 것은 알고리즘에 대한 믿음만이 아니라 법정통화 체제가 아닌 새로운 규범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물론 법정 암호화폐가 나오면 비트코인이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법정통화의 가치 변동성은 방치한 채 디지털화만 한다고 비트코인의 값이 폭락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디지털 금으로서의 매력만 더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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