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모 연세대 교수·경제학

지난해 12월 3일 ‘3차 재난지원금’을 포함한 558조 원의 예산안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로부터 채 4개월도 안 됐는데, 4·7 재·보선을 2주일 앞둔 25일 아침 추경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시간상으로 보면 졸속 추경이고, 통과 시점을 고려하면 다분히 선거용이다. 문재인 정부의 독단적 국가 운영에 이제 국가재정법 제89조에 명시된 추경 요건을 따지는 사람도 찾기 어렵다.

지난해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재난지원금으로 재미를 본 게 문제였다. 선거에 나선 후보가 1인당 10만 원씩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지원’을 검토한다는 후문이다. 문 정부는 예산 편성권을 이용해 선거 전에 재난지원금을 정치 쟁점화했다. 이로써 정부·여당이 선거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다. 정부의 정치적 중립 의무는 헌신짝처럼 버려졌고, 대한민국의 법치는 실종됐다.

1월 28일 정부는 9월까지 국민 70%의 백신 접종을 하고 11월에는 집단면역을 형성시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추경안 처리로 두 달도 안 돼 계획을 수정한 셈이다. 문 정부 출범 이후 추경 편성은 놀랄 일도 아니지만, 국민의 생명에 대한 계획마저 졸속으로 처리하는 오만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추경안은 ‘맞춤형 피해지원 대책’을 표명하고 있으나, 실제 내용을 보면 맞춤형 선거 대책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먼저, 추경으로 기존의 버팀목자금 플러스 사업의 대상을 늘렸다. 상시 근로자 5인 이상인 사업체와 매출액 3억 원 이상 10억 원 이하인 사업체도 지원한다. 사실 가장 피해를 본 사람들은 폐업한 사람들이다.

긴급 고용대책도 형평성과는 거리가 먼 조치다. 고용유지지원금을 받는 대상이 확대돼 상대적으로 피해를 덜 본 사업체가 지원금을 더 받는 불평등한 지원책이 마련됐다. 지난 2월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는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15만6000명이 줄었고,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4만5000명 늘었다. 고용을 유지하는 사업체는 그나마 사정이 상대적으로 좋은 사업체다. 그런 사업체가 더 많은 지원금을 받는 구조다. 최대 다수의 최대 지원 정책은 선거용 대책이지 맞춤형 피해 대책이 아니다.

불합리한 코로나 방역 대책으로 일거리를 없애곤 추경으로 일자리를 창출한다니 어이없다. 추경보다 효과적인 방역 대책이 절실하다. 백신은 9월에나 맞는데, 청년과 여성들 일자리를 만든다고 추경하는 것은 선심성 지원을 통해 표(票)를 사려는 것이란 의심이 든다.

정부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으로 고용 참사를 일으킨 이후 4년 내내 예산으로 방어해 왔다. 이제 추경으로 탈원전 정책의 피해를 보전하고 나섰다. 불행하게도 감면한 소상공인 전기 요금 2000억 원은 연료비 인상으로 조만간 상쇄된다. 이번 추경안 15조 원 가운데서 취약계층 생계지원금 등 꼭 필요한 사업에 지출한 금액의 비중은 0.5%도 안 된다. 정말 어려운 사람들의 아픔과 호소는 득표만 계산하는 문 정부가 외면했다.

형평성도 없고 효과도 없이 돈만 뿌리는 추경으로 국가채무는 965조9000억 원으로 늘었다. 경제는 더 침체해 GDP 대비 국가채무의 비율도 48.2%로 급증했다. 경제성장을 이끌고 재정을 아끼던 당당한 공무원들은 다 어디 갔나. 책임자가 책임지는 사회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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