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구마사’ 논란의 본질은 역사왜곡과 납득하기 어려운 중국식 소품 사용이다. 하지만 그 불똥이 엉뚱하게 이 드라마를 쓴 박계옥 작가의 전작인 ‘철인왕후’의 주인공 신혜선으로 옮겨붙었다. 일부 네티즌이 신혜선을 모델로 쓰고 있는 업체에 항의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정작 논란의 중심에 선 ‘조선구마사’의 출연 배우들을 향한 별다른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았다. 드라마 집필과 연출의 문제를 배우에게 책임 전가하는 것은 온당치 않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으로 ‘철인왕후’ 방송 당시 불거진 문제를 주인공을 맡았던 신혜선에게 뒤늦게 덧씌우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결국 ‘철인왕후’를 통해 인기를 얻은 신혜선이 겪는 애먼 유명세라 볼 수 있다.
물론 네티즌 개개인의 의견도 존중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이를 다루는 언론은 보다 중립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 벌어지고 있는 현상은 전하되, 이런 주장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점도 분명히 짚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고민보다는 페이지뷰와 클릭을 높이기 위해 무조건 자극적으로 논란을 부추기는 구태가 반복되고 있다.
25일에는 유튜브 웹예능 ‘헤이나래’에서 성희롱성 개그를 했다는 이유로 방송인 박나래가 질타를 받았다. 인형을 활용한 부적절한 행동은 지탄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이 역시 적정 수위를 넘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다.
이 프로그램은 결국 폐지가 결정됐고, 박나래 측은 사과문을 발표했다. 비판의 불길이 쉽게 가라앉지 않자 박나래는 25일 새벽 자필 편지로 “부적절한 영상으로 많은 분께 불편함을 끼친 것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방송인으로 또 공인으로서 한 방송을 책임지며 기획부터 캐릭터, 연기, 소품까지 꼼꼼하게 점검하고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이 저의 책임과 의무였는데 저의 미숙한 대처능력으로 많은 분께 실망감을 안겨드렸다”고 재차 사과했다.
하지만 이 여파는 그가 출연하는 또 다른 예능 MBC ‘나혼자 산다’로 번지고 있다. 몇몇 네티즌은 ‘나혼자 산다’의 하차까지 주장하고 나섰다. 여기서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헤이나래’에서 박나래의 행동은 분명 부적절했다. 그래서 사과했고 프로그램은 폐지됐다. 하지만 이는 ‘나혼자 산다’와는 별개 사안이다. 그의 행동이 적절하지 않았지만, 법적인 처벌을 받을 불법 행위를 한 것 또한 아니다. 몇몇 네티즌의 주장처럼 ‘나혼자 산다’에서 하차하고, 방송 활동을 중단할 이유는 없다. 그런 식으로 누군가의 생업을 끊게 만들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몇몇 강성 네티즌이 이 같은 주장을 펼치는 것까지 원천적으로 막을 순 없다. 그러나 그 논리에 장단 맞추는 몇몇 언론의 중심 없는 행보는 그쳐야 한다. ‘헤이나래’는 키즈 유튜버의 동심 어린 시선과 수위 높은 개그를 펼치는 박나래의 서로 다른 시선을 비교해 보여주는 콘셉트다. 이를 기반으로 본다면 박나래는 기획의도에 부합하려는 퍼포먼스를 보인 것이라 볼 수 있다. 녹화된 분량을 적정 수위로 편집해 내보내는 것이 제작진의 역할이다. 이런 기획의도를 가진 프로그램을 만든 제작진과 논란이 불거질 장면을 편집과정에서 걷어내지 못한 제작진의 잘못이 크다는 의미다.
하지만 ‘헤이나래’ 논란의 짐은 오롯이 박나래가 지고 있는 모양새다. 이런 프로그램의 제작 프로세스를 모르는 네티즌은 무턱대고 비난의 화살을 쏘더라도, 현장을 취재하며 조금이라도 이런 과정을 아는 언론까지 덮어놓고 가세하는 모양새는 못내 아쉽다.
최근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실시간 검색어가 사라졌다. 이를 기반으로 취재 없이 대동소이한 기사를 내놓던 언론들은 길을 잃었다. 어뷰징 기사를 쓰는 속보 체제에 길들여져 있던 몇몇 언론 매체들은 결국 적극적인 취재를 통해 기사를 생산하기보다는, 자리에 앉아 인터넷 서핑을 하며 논란을 좇는 길을 택한 모양새다. 논란이 불거지면 중립적이고 합리적으로 이를 판단해 사태를 수습하기보다는, 경도된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 적고 오히려 기름을 부으며 ‘논란’이라는 먹거리를 계속 생산해내려 한다.
그 안에서 피해자는 항상 이름과 얼굴이 알려진 연예인이다. 이건 온당치 않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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