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중(1929∼1986)

친정아버지가 별세하신 지 햇수로 34년째가 됐다. 그날 병원에서 위독하다며 퇴원을 강요했고 주말이라 병원 업무가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병원비도 계산하지 못하고 구급차에 위독한 아버지만 태워 고향 집으로 보내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평평 울었던 기억을 떠올리면 아직도 목이 멘다.

19세에 18세 어머니를 만나 결혼한 아버지는 그해에 아버지가 됐고 3년 터울로 내가 태어나던 1950년 6·25전쟁에 참전하셨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오긴 하셨어도 머리에 서너 조각의 파편이 박혀 평생을 힘들게 살면서도 국가의 혜택이라곤 아무것도 받지 못하고 가난을 멍에처럼 짊어지고 육 남매를 키우느라 두더지처럼 땅만 일구다 세상을 하직한 분이셨다. 고된 노동을 술에 의지하셨고, 부실한 식사로 인해 몸에 병을 얻게 됐다. 당뇨가 시작되면서 더더욱 힘겨운 노동은 아버지를 지치게 했고 술은 차츰 건강을 앗아가면서 급기야 병원 신세를 지게 됐다. 진주에 있는 종합병원을 전전하면서 혼자 입·퇴원을 하셔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고 딸 집이라고 오셔도 따뜻한 고깃국 한번 끓여 드리지 못했다. 한 번은 퇴원하고 우리 집에 오셨다. “아버지 뭐 잡숫고 싶으세요.” “해삼 좀 사 오너라.” 그때 가내부업을 하던 터라 “아버지 돈 드릴 테니 사 오세요.” 아버지는 아무런 말씀을 하지 않으시고 집으로 가셨다. 그리 보낸 아버지는 두어 번 입·퇴원을 하시다 먼 길을 가셨다.

어머니가 계시기에 아버지의 빈자리를 느끼지 못했고 또한 사느라 아버지의 부재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2018년 어머니가 별세하고 친정을 가보니 어느 자리 하나 따뜻한 곳이 없었다. 부모님의 큰 그늘이 얼마나 소중했던가를 실감하는 순간 ‘죽은 효자는 있어도 산 효자는 없다’라는 옛말이 가슴을 내려치고 있었다. 그날부터 ‘아버지 돈 드릴 테니 사 오세요’라는 이 말이 가슴을 짓누르는데 삼키지도 뱉지도 못하는 설움이 됐다. 음력 정월 스무여드레 아버지 기일이다. 목구멍에 걸린 이 설움 때문에 큰 올케한테 문자를 보냈다. ‘제수에 쓸 전 서너 가지 준비할게.’ ‘네 고맙습니다.’ 답 문자를 받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삼십 년 세월이 지난 지금도 해삼을 사 드리지 못한 죄의식은 잊히지 않는다. 해삼을 제수로 올릴 수는 없고 제물은 짝수를 올리는 것이 아니어서 다섯 가지 전을 준비했다. 새우와 오징어 튀김을 하고 어머니가 평소 좋아하셨던 우엉잎 전과 배추전 그리고 고구마튀김 이렇게 다섯 가지를 노란 치자 물을 입혀 튀기고 구워 작은 채반에 담았다. 코로나로 인해 연년생 저학년 손주들이 학교와 학원을 쉬는 바람에 동행하지 못하고 남편 손에 들려 친정으로 보내고 나니 답답하던 가슴이 조금 시원해졌다.

저녁을 먹고 처마 밑에 달린 외등을 환하게 밝혀놓고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한 후 아버지를 위해 ‘지장경’ 한 편을 독송(讀誦)해 올리고 “아버지 장남 내외가 정성으로 올리는 약주에 해삼 대신 새우와 오징어 튀김 안주 삼아 맛나게 흠향(歆饗)하시고 철없이 살았던 둘째 딸의 불효를 용서해 주십시오. 삼십 년 세월 목구멍에 걸린 이 설움도 이제 삼켜버리고 싶습니다. 아버지 많이 사랑합니다.

강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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