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일이다. 모처럼 엄마와 만나 볼일을 보다가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설렁탕 집에 들어갔다. 엄마는 설렁탕에 밥을 말아 몇 술 드시더니 밥 위에 깍두기를 얹어 마구 씹어먹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셨다. 그러고는 “영주야, 그 깍두기… 한 입 베어 먹고 줄래?” 하시는 것이었다. 그게 뭐 어려운 일일까 싶어 나는 깍두기를 한 입 베어 먹고는 무심하게 엄마의 밥숟가락 위에 깍두기 조각을 올려드렸다. 엄마는 내가 베어 먹고 드린 깍두기를 아주 조심스럽게 천천히 씹어 드셨다.
자그마한 몸집에 곱고 하얀 피부를 가진 엄마는 열여덟 어린 나이에 종갓집 큰며느리로 시집오셨다. 제법 부유했던 외갓집에서 고생 모르고 자란 엄마는 우리 다섯 남매를 낳아 기르시며 종부로서의 소임을 다하느라 무척 힘들어하셨고 기관지 천식이란 지병까지 얻으셨다고 한다. 먹거리가 지금처럼 넉넉한 때도 아니었고 어떻게든 끼니를 해결할 수만 있어도 다행이라 여기던 시절. 자신의 골수와 피로 만든 젖으로 자식들을 먹여 키웠으니 그런 어머니들이 나이 들어 뼈와 치아가 약해지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이면 엄마는 팔다리가 아파 거의 주무시질 못했다. 아홉 살 무렵이었던 난 그런 엄마가 괜히 불쌍해서 꾸벅꾸벅 졸면서도 조막만 한 손으로 엄마가 잠드실 때까지 다리를 주물러 드리곤 했다. 그러고 나면 엄마는 동전을 몇 개씩 주곤 하셨는데 용돈을 받기 위해 엄마 다리를 주물러 드린 건 분명 아니었다. 난 많이 어렸지만 같은 여자여서일까? 그때 엄마는 세상 전부였고 엄마의 아픔은 무조건 나의 아픔으로 느껴졌을 뿐이었다.
그렇게 착했던 내가 사춘기를 지나 스무 살이 돼 연애도 하고 결혼도 했다. 그런데 자식을 낳아 길러봐야 부모 마음을 안다는 말과는 전혀 상관없이 난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서도 그저 나 살기에만 바빠 엄마를 잊고 지냈다. 나 힘든 것만 생각했고 그것도 모자라 엄마를 원망하면서 중년을 넘긴, 세상 못된 딸이 돼 30년을 살았다. 괜히 엄마가 불쌍해서 가슴 시려했던 어린 날의 착한 딸은 아예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 엄마에게 안부 전화를 하던 중 엄마의 말소리가 어째 이상했다. ‘스스’ 소리가 나며 자꾸 엄마의 말이 새어 나간다. 통화하며 생각해보니 엄마는 틀니를 빼고 계시다 전화를 받은 거였다.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는 치아 사이로 엄마의 말은 자꾸만 새어 나갔고, 엄마는 어떻게든 또박또박 말을 하려고 애쓰는 중이었다. 틀니를 뺀 엄마의 홀쭉한 얼굴, 주름진 뺨이 떠올라 먹먹해지는 가슴을 간신히 누르며 통화를 마쳤다. 하긴 엄마는 한 번도 틀니를 뺀 모습을 자식들에게 보여주지 않으셨다.
설렁탕 집에서 깍두기를 한입 베어 먹고 달라던 엄마를 떠올려 본다. 지금의 난 이미 그때의 엄마 나이를 지났고, 나 역시 늙어가며 점점 작아져만 가는 엄마를 그저 애처롭게 바라보고만 있다. 잘해드린 것도 없고 무언가 해 드릴 수 있는 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그땐 내가 엄마의 엄마가 되고 싶다. 그래서 내가 받은 사랑을 반의반만큼이라도 갚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며칠 전 사다 놓은 무를 꺼내 껍질을 벗긴다. 도마 위에 올려놓고 가로세로 1㎝, 아주 작게 엄마가 한입에 먹을 수 있는 크기로 잘랐다. 깨끗이 씻어서 사이다와 소금에 절인다. 절인 무에 빨간 고춧가루로 곱게 물을 들이고 미리 쑤어놓은 풀과 액젓, 양념을 섞어 잘 버무린다. 하루 이틀 익혀서 새콤달콤한 맛이 들면 엄마에게 가져갈 깍두기다.
오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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