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호 논설고문

최근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부쩍 자주 듣게 된 영어 중의 하나가 ‘legend’다. 당사자가 민망해할 법한 경우도 적지 않지만, 더러는 그런 호칭이 걸맞다. 1947년생 동갑인 싱어송라이터로, ‘창공의 맑은 공기처럼 투명하고 섬세한 고음의 미성(美聲)’ 윤형주와 ‘흙과 바람으로 빚은 목소리의 타고난 음악 천재’ 송창식이 결성했던 남성 포크 듀엣 트윈폴리오(Twin Folio)가 대표적이다. 서울 무교동의 음악감상실 쎄시봉 무대에 서면서 처음 만난 이들은 저음이 돋보인 이익균과 함께 1967년 9월에 만든 ‘쎄시봉 트리오’ 이름으로 활동하다가, 이익균이 군(軍) 입대로 빠져, 1968년 2월 트윈폴리오로 다시 출발했다.

이들은 미국 가수 코니 프랜시스 노래를 개사(改詞)한 ‘웨딩케익’을 비롯해, ‘사랑의 기쁨’ ‘하얀 손수건’ ‘축제의 노래’ ‘더욱더 사랑해’ ‘바람 속에’ ‘행복한 아침’ 등 번안곡들을 통기타를 치며 불러, 원곡보다 더 가슴을 울렸다. ‘천상(天上)의 화음’으로 “20세기 최고 포크 듀오인 미국의 사이먼 앤드 가펑클에 필적한다”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의과대학 재학 중이던 윤형주는 의사 아닌 길은 한사코 반대하는 부친을 거역할 수 없었다. 1969년 12월 21∼22일 서울 남산 기슭 드라마센터 공연이 고별 무대였다. 윤형주는 ‘해체’를 선언했고, 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펑펑 울었다. 객석도 눈물바다였다. 12곡이 담긴 첫 독집 음반 ‘트윈폴리오 리사이틀’이 그룹 해체 후인 1970년에 나오고, 10년 넘게 거듭 재발매된 배경이다.

독자 활동에 나선 송창식도, 결국 되돌아온 윤형주도 수많은 자작(自作) 명곡을 발표하며, 1981년엔 함께 노래한 앨범 ‘트윈폴리오’도 내놨으나 재결합을 지속하진 않았다. 그 앨범엔 이런 글도 남겼다. ‘종일 먼지 쌓인 음악감상실의 피아노 커버가 우리의 유일한 이불이던 14년 전 어느 겨울의 만남에는 우리가 가히 짐작 못 할 의미가 있었음을 소중히 여겨 오늘 둘이 다시 노래한다.’ 윤형주는 이런 취지로 말한 적도 있다. “많은 사람이 간절히 바라는 트윈폴리오 재결성을 하지 않는 이유는 그분들이 기억하는 것보다 더 좋은 목소리와 화음이 우리도 이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송창식, 윤형주, 트윈폴리오야말로 ‘진짜 레전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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