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유전자 복제를 소재로 한 ‘나를 보내지 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일본계 영국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사진)가 인공지능(AI) 로봇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클라라와 태양’(민음사)을 들고 돌아왔다. 2017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후 4년여 만에 처음 펴내는 장편소설로, 이달 초 영국을 시작으로 30개국에서 차례로 출간되고 있다. 그동안 이시구로는 미스터리, 과학소설(SF), 역사소설, 판타지 등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거장의 내공을 보여줘 왔다. 이번 작품도 출간 즉시 영미권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이어가며, 명실상부 현대 영문학을 대표하는 최고의 작가임을 증명하고 있다.
소설은 우화 형식의 SF로, AI 로봇 클라라와 몸이 불편한 소녀 조시 사이의 우정을 골자로 한다.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느끼는 인간의 복잡한 감정까지 이해하는 발달된 로봇 클라라는, 친구이자 자신의 주인이기도 한 조시를 통해 세상을 배우고, 자신의 역할을 찾아 나간다. 배경은 아이들이 집에서 원격교육을 받으며, 유전자 편집을 통해 더 ‘향상’된 인간이 될 수 있는 근미래. 과거처럼 학교라는 집단에서 사람들과 어울릴 기회가 없고, 친구의 역할은 AI가 대신한다. 바로 인공친구(Artificial Friend·AF)라 불리는 클라라와 같은 존재들이다. 물론, 과학기술 발전을 기반으로 새롭게 구성된 계급사회에서 ‘향상’이니, ‘AF’니 하는 것들은 특정 계층만 향유하는 것들이다. 소설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본격화되기 직전에 완성됐다고 하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가속화된 시스템의 변화가 집단 간 불공평 격차를 더욱 벌어지게 하는 지금 풍경과 상당히 흡사하다.
전작에서 “소설의 위대한 정서적 힘을 통해 인간과 세계를 연결”한다는 평을 받은 작가는 이번에도 서로 가장 멀어 보이는 것을, 가장 타당한 방식으로 만나게 한다. 예컨대 가장 차갑고 인위적인 존재라고 볼 수 있는 클라라가, 가장 뜨겁고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태양과 연결되는 설정이다. 클라라는 물리적으로도 또 심리적으로도 ‘빛’에 의존한다. 태양광 에너지로 움직이며, 어려움에 봉착하면 태양에 기도한다. ‘해’를 믿는 클라라는 AF 판매점에서 조시의 집으로 이동한 후 조시의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정체가 의심스러운 초상화 화가 등을 만나며 자신의 과제를 수행한다. 조시를 지켜야 한다는 그것. 이야기는 1인칭 화자, 즉 클라라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이때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AI의 마음이, 너무도 비인간적인 인간의 행태와 대조되는데, 이것은 세상과 인간관계의 부조리함을 부각시키며 이야기를 서늘하게, 그리고 우리를 슬프게 만든다. 인간(조시)과 자연(해)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도, 인간 사이의 사랑을 회복시키는 것도 모두 로봇인 클라라여서. “삶과 죽음에 관한 명상을 강력하고 효과적으로 이어간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 사랑을 배워나가는지를 재현하고 있다” “우리 자신을 바깥에서 들여다보게 한다” 등 해외 유력지들의 평을 다시 곱씹게 되는 대목을 계속해서 만나게 한다. 448쪽, 1만7000원.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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