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왜곡 논란으로 폐지된 SBS ‘조선구마사’ 후폭풍이 여전히 거세다. 이런 일도 처음이지만, 한도 끝도 없이 다른 작품이나 배우로 퍼지는 양상이 매우 우려스럽다.
종영한 지 한 달이 지난 tvN 드라마 ‘철인왕후’가 뒤늦게 불똥을 맞은 게 그렇다. ‘조선구마사’ 박계옥 작가의 전작이라는 게 빌미가 됐다. 판타지 사극이어서 역시 역사 왜곡이라는 비난을 샀다. 네티즌들의 집중포화에 tvN은 멀쩡한 주문형비디오(VOD) 서비스를 중단했다. 주연배우 신혜선은 새로운 캐릭터 도전으로 칭찬받다가 하루아침에 이상한 드라마에 생각 없이 출연한 ‘공적(公敵)’이 됐다. 조직적인 불매운동으로 출연하던 광고도 떨어져 나갈 뻔했다. JTBC는 더하다. 심지어 방영도 되지 않은 드라마 ‘설강화’가 논란에 휩싸였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 역사를 왜곡했다는 이유였다. 다급해진 JTBC는 두 차례 해명자료를 냈으나 별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JTBC의 또 다른 드라마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마저 비난의 표적이 됐다. 중국 소설 원작이 문제였다. 시진핑(習近平) 정부의 선전 소설이 아니냐는 지적이었다. 놀란 제작진과 배우들은 음주운전을 한 것도 아니지만, 사과부터 해야 했다. 시청자의 목소리는 외면할 수 없는 ‘권력’이었다.
역사 왜곡은 분명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다. 판타지 사극이라는 변명이 면죄부가 될 순 없다. ‘조선구마사’가 넷플릭스 ‘킹덤’처럼 역사 고증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였다면 이 정도로 사달이 나진 않았을 것이다. 잘못된 것에 대한 비판의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동시에 여러 가지 고민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우선은, 역사 왜곡과 창작의 자유가 충돌하는 부분이다. 과연 어디까지가 역사 왜곡인지, 역사 왜곡 불가라는 신성불가침의 원칙하에 창작의 자유는 침해당해도 되는지다. ‘조선구마사’는 중국풍의 복식과 소품이 문제가 됐다. 중국이 김치와 한복을 자기네 것으로 홍보하는 데 뿔난 네티즌들의 반발이었다. 하지만 감정에만 치우친 건 아니었는지 묻고 싶다. 중국의 혐한을 보면서 국수주의라고 혀를 찼던 우리가 지금 똑같이 행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둘째는, ‘슈퍼 갑’으로 떠오른 일부 시청자, 구독자, 팬의 횡포다. 다수의 의견임을 강조하는 이들은 몇몇 인터넷 게시판과 커뮤니티를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거칠게 전파한다. 때론 언론이나 관계기관도 간과했던 깨달음을 주기도 하지만 그러지 않은 사례도 있다. 더구나 이들 주장의 진위를 검증할 방법도 없다. 비판이 시작되면 그 기세가 매우 즉각적이고 연쇄적이어서 사실 여부를 떠나 고개부터 숙일 수밖에 없다.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네티즌들의 단체 행동이 콘텐츠의 기획과 제작단계부터 영향을 미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역사 왜곡은 용서받을 수 없지만, 이로 인해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는 점은 명심해야 한다. 특정 국가나 집단을 향한 맹목적인 비난, 정치적 이슈에 따라 요동치는 잣대는 창작 의욕을 꺾는다. K-콘텐츠를 즐기는 그 누구에게도 이로울 것이 없는 게임이다. ‘자유론’에서 ‘다수의 횡포’에 대해 우려를 나타낸 존 스튜어트 밀의 말을 다시 새겨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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