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판매량도 1년새 73% ‘쑥’
편리함에서 불편함으로 ‘역행’
“소유·경험·접촉의 가치 인식”
BTS ‘다이너마이트’ LP제작
예약분 매진…새 굿즈로 열광
90년대 명곡 카세트테이프로
‘리와인드 블라썸’ 프로젝트도
“지지직∼.”
턴테이블이 돌고 비닐(LP) 위에 스타일러스(바늘)를 올리는 순간 들려오는 소리다. 이제 곧 당신이 원하는 음악이 흐를 것이란 전주이다. LP를 좋아했던 이들에게는 향수를 자극하는 가슴 떨리는 소리인 반면, 음원 기반의 깨끗한 음질을 추구하는 음악 팬들에게는 소음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은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LP와 카세트테이프가 10∼20대 사이에서 소위 힙(hip)한 아이템이 되면서 이 시장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시대에, 어떤 요소들이 불편함을 감수하며 LP를 선택하게 만든 것일까?
◇LP·카세트테이프의 역습
미국 빌보드와 MRC 데이터가 지난 1월 공개한 2020년 미국 음악 시장 연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한 해 LP는 2754만 장 판매됐다. 이는 30년 만에 최다 판매 기록이다. 국내 상황도 비슷하다. 예스24가 분석한 LP 관련 데이터를 보면, 2020년 LP 판매량은 2019년과 비교해 73.1%가량 증가했다.
LP 판매량은 이미 몇 해 전부터 꾸준히 증가 추세였다. 하지만 이는 LP를 기억하고 추억하는 세대들을 대상으로 한 한정적 수요였다. 하지만 최근 1∼2년 사이 LP 붐이 전 연령층으로 확대되며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지고 있다. 이런 흐름은 트렌드에 민감한 K-팝 가수와 프로젝트 그룹들의 발 빠른 대처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룹 방탄소년단은 정규 4집 앨범을 LP로 낸 데 이어 지난해 한국 가수 최초로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오른 ‘다이너마이트’를 LP와 카세트테이프로 제작해 예약 판매분이 매진됐다. LP와 카세트테이프에 익숙지 않은 세대인 방탄소년단의 팬들에게는 새로운 형태의 굿즈(goods)였던 셈이다. 또 지난해 복고 열풍을 일으킨 MBC 예능 ‘놀면 뭐하니?’가 선보인 프로젝트 그룹 싹쓰리 역시 카세트테이프를 발매했다.
이런 변화에 발맞춰 CJ ENM 계열 스톤뮤직과 KT 계열 지니뮤직은 올 상반기 ‘리와인드 블라썸(Rewind: Blossom)’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1990∼2000년대 초반 사이 사랑받은 명곡을 카세트테이프로만 출시하는 프로젝트다. 최근 이들은 ‘봄 캐럴’이라 불리는 ‘벚꽃엔딩’이 담긴 버스커버스커의 1집&1집 마무리 앨범을 합친 한정판 2LP를 제작, 발매했다. 이해일 지니뮤직 콘텐츠 1본부장은 “LP는 팬들에게 진정으로 음악을 소유했다는 인식과 촉각적 음악 경험을 선사한다는 강점이 있다”며 “최근 몇 년간 LP 시장이 전 세계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2030세대는 LP 앨범 감상을 새로운 음악 경험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편리’ 버리고 ‘감성’ 취하다
세상은 편리한 방향으로 흐른다. 어떤 치명적인 문제점이 발생하지 않으면 불편한 방향으로 회귀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그런데 LP와 카세트테이프는 그 드문 일에 해당된다. 음악을 듣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이 복잡하고, 음질이 CD나 음원을 뛰어넘지 못한다. 결국 LP와 카세트테이프에 대중을 열광케 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의미다. 미국음반산업협회(RIAA)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1986년 이후 34년 만에 처음으로 LP 매출이 CD를 앞질렀다. 이 보고서는 “코로나19 여파에도 LP 매출은 2019년 대비 28.7%나 증가한 반면 같은 기간 CD는 23% 하락했다”고 밝혔다. CD 시장이 하락세인 가운데 LP 시장은 확대됐다.
이는 결국 LP라는 콘텐츠의 고유한 이미지가 주는 ‘감성’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국내 유일 LP 제작 공장을 운영하는 마장뮤직앤픽처스는 언론에 “소유와 경험, 접촉이라는 물리적 과정을 통한 음악 듣기에서 LP의 가치를 다시 인식하게 됐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는 K-팝 가수의 팬들이 실물 앨범을 구입하는 것과 같은 맥락일 수 있다. 이들은 앨범을 구입하지만 CD로 음악을 즐기는 경우는 드물다. 대다수는 음원사이트에서 편리하게 음악을 들으며 앨범을 살핀다. 스타의 화보집 겸 일기장과 같은 앨범은 음악적 가치 이상의 가치를 지닌 교감의 매개체인 셈이다.
이런 흐름에 맞춰 최근에는 LP 정기 구독 서비스도 등장했다. 프로모션 펀딩을 진행 중인 ‘월간 바이닐’은 다양한 뮤지션의 음악을 담은 앨범을 제작해 매월 구독자에게 실물 LP를 전달하는 서비스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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