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가브리엘 포레

19세기 佛 인상주의 선구자
가곡 연상되는 서정적 합창
오르간과 하프 소박한 선율

마치 꽃 뿌려주듯 온화하게
남은 사람에게도 위로 전해


위로가 필요한 순간, 안쓰러운 나 자신을 다독일 때 나는 마음의 스위치를 켜듯 레퀴엠을 듣는다. 영혼을 위로해 주는 음악을 들으면 몸이 먼저 반응한다. 긴장했던 근육이 이완되며 이내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다.

레퀴엠은 진혼곡, 죽은 이를 위한 위령 미사곡이다. ‘위령’이라는 말 그대로 영혼을 위로하는 음악이지만 죽은 사람의 영혼만을 위로하는 것은 아니다. 장례식은 죽은 자를 떠나보내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위로의 시간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레퀴엠은 삶과 죽음에 대한 작곡자의 엄청난 사색의 결과이며 인간의 생사고락이 음악 안에 모두 들어 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모든 오페라 아리아의 제목은 그 곡의 첫 소절 가사이듯 ‘Requiem aeternam dona eis, Domine(주여,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로 시작하는 입당송의 첫 가사 ‘Requiem(안식)’으로 인해 제목을 ‘레퀴엠’으로 붙이게 됐다. 최초의 레퀴엠은 요하네스 오케겜(1410∼1497)의 작품으로 르네상스 시대라고 할 수 있는 1600년 무렵까지는 기악 반주가 없는 아카펠라 형식의 순수 성악곡이었다. 그러나 바로크 시대에 들어서는 악기의 발전과 함께 기악의 반주가 붙기 시작했고 점차 독창, 합창, 관현악으로 이뤄진 대규모 편성의 작품으로 발전했다.

19세기 프랑스 인상주의의 선구자였던 가브리엘 포레(1845∼1924)는 행복하고 온화한 음악으로 레퀴엠을 가득 채웠다. 죽음 앞에 최후의 심판 ‘진노의 날’에 대한 경각심을 표현했던 베르디와는 달리 ‘포레 레퀴엠’은 천상의 음악으로 꽃을 뿌려주는 듯하다. ‘온화한 레퀴엠’으로 불리기도 하는 그의 작품은 전체를 통해 고요하게 연주되는 오케스트라부와 멜랑콜리한 그의 가곡을 연상케 하는 서정적인 합창으로 어우러져 있다. ‘포레 레퀴엠’의 압권은 마지막 곡인 ‘천국에서(In paradisum)’이다. 오르간과 하프의 소박하고 간결한 선율은 천국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며 여성 합창(혹은 보이 소프라노가 부른다)은 죽은 자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천사를 노래한다. ‘천국에서’를 듣노라면 더 이상 죽음의 두려움은 찾아볼 수 없으며 살아남은 이들에게도 포근한 위로를 안겨준다.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듯한 곡이지만 당시 이교도적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포레는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나의 레퀴엠은 죽음의 두려움을 표현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돼왔다. 오히려 ‘죽음의 자장가’라고 불렸다. 내가 죽음에 대해서 느낀 것은 서글픈 스러짐이 아니라 행복한 구원이며, 영원한 행복에의 도달인 것이다.”

누구나 ‘힐링’을 얘기한다. 온·오프라인의 수많은 콘텐츠를 보면 우리는 힐링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프고 지친 몸이야 치료로 낫기도 하지만 상처받고 응어리진 마음을 기댈 곳은 찾기 쉽지 않다. 레퀴엠을 통해 나의 마음에 위안을 주는 법을, 나아가 타인을 조용히 위로하는 법을 배워보고 싶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오늘의 추천곡
- 레퀴엠 ‘천국에서’


총 7곡 중 마지막 곡 ‘천국에서’는 다른 작곡가의 레퀴엠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포레의 레퀴엠에서만 등장하는 작품.

일반적으로 레퀴엠에 등장하는 ‘진노의 날’(최후의 심판)을 아예 빼 버리고 대신 위로의 감정과 천국으로의 소망을 담은 ‘천국에서’를 더했는데, 그의 레퀴엠이 이교도적이라 비판을 받았던 이유다. 곡이 시작되면 마치 천국을 묘사하는 듯한 오르간의 분산화음이 펼쳐지고 소프라노의 합창이 뒤따른다. 이어 바이올린과 하프가 더해져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이 절정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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