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 강민수

민수야, 이모는 지금도 2002년 4월 13일 오후를 생생히 기억해. 네가 태어났다는 소식에 회사 일이 끝나기가 무섭게 병원으로 달려갔지. 유리창 너머에서 너는 눈을 감고 유난히 길고 하얀 손가락으로 주먹 쥔 손을 턱 아래 붙이고 있었어.

그때부터 넌 이모 눈 속에, 마음속에 쏙 들어왔지. 금요일이면 너를 보러 서울에서 산본으로 퇴근해 주말 동안 함께 지내다 월요일 바로 서울로 출근하곤 했어. 그런데도 네 얼굴이 어른거려 수요일쯤이면 다시 산본으로 퇴근했단다. 나를 ‘이오’라고 부르던 너는 네 엄마 티셔츠를 입고 있는 나와 네 엄마(여동생)가 헷갈려 나를 “엄마”라고 부르기도 해 우리 자매를 웃게 만들었지.

네가 다섯 살 때 내가 미처 산본으로 못 간 주말에 엄마, 아빠와 함께 이모 집으로 놀러 온 적이 있었어. 한참을 놀다가 해 질 무렵 산본으로 떠나는 네 가족을 배웅하러 내려온 주차장에서였어. 차 뒷좌석에 네 엄마와 나란히 앉은 네게 잘 가라고 인사하자 네 아빠(제부)가 천천히 차를 운전했는데 10m쯤 거리가 멀어졌을 때 갑자기 네가 창문 밖으로 몸을 쑥 내밀고 나를 쳐다보며 소리쳤지. “이오(이모)∼ 친구 부여서(불러서) 노야(놀아)∼.” 민수야, 이모는 네가 태어나면서부터 안아주고, 우유 먹이고, 업어서 재우는 걸 반복하면서 표정만 봐도 네가 어떤 기분인지를 알아차릴 수 있었는데 그날도 그랬단다. 혼자 사는 이모만 남겨두고 엄마, 아빠, 너만 차를 타고 떠나는 게 마음에 걸렸던 너는 친구 불러서 재미있게 놀라고 이모한테 일러준 거였지. 그렇게 이모를 걱정하는 어린 네 마음이 너무 예뻐서 그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어.

한번은 외가 식구들이 일본여행을 갔는데 하필 그 무렵 민수 네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온 가족이 네 안색을 살피느라 초긴장 상태였어. 관광 다니는 동안 네 엄마와 이모, 외숙모가 번갈아가며 너를 업고 다녔는데 가이드가 그랬지. “아이는 하난데 왜 엄마가 셋이에요?” 그 말에 외가 식구 모두 한바탕 웃었단다. 이모는 싱글, 외숙모는 결혼한 지 5년이 가깝도록 아기 천사가 찾아오지 않아서 민수 네가 더 오랫동안 ‘세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었어. 다행히 네가 여섯 살이 됐을 때 네 외사촌 동생 수민이가 태어났으니 외가는 온통 축제 분위기였지.

민수 네가 지난 설날 대학 입학도 하기 전에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께 세배하고 용돈 봉투를 드리고 수민이 용돈까지 챙겨왔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대견했는지 몰라. 거리 두기로 함께하지 못한 이모에겐 커피·디저트 온라인상품권을 보내주는 센스쟁이 민수야, 네가 태어나던 날 봤던 그 긴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치려나 했더니 너는 스스로 전자공학도의 길을 선택했지. 네 인생의 계획을 스스로 세우고 뭐든 치열하게 준비하며 힘든 과정을 마다하지 않는 네 담대함이 이모는 자랑스러워. 때로는 무릎이 꺾이는 순간도 있을 테지만, 이모는 민수를 믿어. 어떤 순간에도 민수는 길을 찾아내리라는 것을.

민수야, 아무리 봐도 이모를 한 군데도 닮지 않은 듯하지만, 네가 이모랑 똑 닮은 점이 있어. 좋아하는 일에 푹 빠져서 힘들어도 힘든 줄 모르고 해내는 거 말이야. 그래서 이모는 네가 걱정스럽고, 그래서 네가 더 사랑스러워. 민수야, 19번째 생일 축하해. 이제 너 하고 싶은 일 맘껏 하면서 꿈을 펼치길 기도할게.

민수의 하나뿐인 이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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