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규 논설위원

4·7 선거 결과와 관련해 뉴욕타임스는 지난 7일 자 기사에서 내로남불(naeronambul)이란 한국의 유행어까지 소개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뜻풀이도 있다. 이 표현은, 작가 이문열이 1987년 소설 ‘구로아리랑’에서 “남한테 안 들키믄 로맨스고, 들키믄 스캔들”이라고 하기 전부터 대학가에서 쓰이고 있었다. 이후 여의도 정가에 틈입해서는 ‘내가 땅 사면 투자, 남이 사면 투기’라는 말과 함께 예술-외설과 오락-도박 등의 파생어를 낳았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 투영된 채 오늘날에는 아전인수·이중잣대의 의미로 사용된다.

그러나 어원을 모르는 이들은, 즉석에서 지은 두운(頭韻) 4행시 같은 내로남불이란 말을 대하면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원어로 표기하면 ‘내ro(mance)남不’이어서 혼란스러운 탓이다. 굳이 로맨스를 고집한다면 불륜을 스캔들로 치환해 ‘내로남스’라고 했어야 옳다. 또, 불륜을 강조하려면 로맨스를 연애로 바꿔 ‘내연남불’이라 해야 더 잘 어울린다. 연애(戀愛)란 메이지(明治)시대에 영어 러브(love)를 대체해 일본에서 만든 말이다. 번역어연구가 야나부 아키라(柳父章)는 ‘일본의 전통에 없던 낯선 관념’이라고 했지만, 우리의 로맨스 대체어로도 억지스럽진 않다.

‘근본’ 없는 속어 내로남불을 대체하기 위해 급조된 말이 아시타비(我是他非)다. 지난해 말 교수신문이 선정한 2020년의 사자성어다. 이 표현도 부자연스럽기는 마찬가지다. 1980년대 운동권 조어 아방타방(我方他方)에 대입해 ‘타’를 살리려면 ‘아’ 대신 ‘자(自)’를 써서 자시타비라고 해야 한다. 결국, 다른 사람 인(人) 또는 너 여(汝) 자를 쓴 아시인비 또는 아시여비가 더 자연스럽다.

웹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내로남불이라는 표제어가 없으나 우리말샘에는 이미 올라 있다. 표준어가 되기 직전인 이 용어를 다른 말로 바꾸기엔 늦었다는 뜻이다. 나와 남으로 갈라치기 해 놓고 시비를 가르는 위선적인 정치인과 그 주변 세력들로 인해 만들어진 내로남불은 조어법상 태어나지 않았어야 할 말, 시쳇말로 귀태어(鬼胎語)다. 자랑스럽지 못한 코드 문화가 담긴 유행어가 한국발 외래어로 국외 언론에 소개되는 현실을 지켜보는 ‘교양 있는’ 국민은 지금 마음이 편치 않다.
황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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