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경일기 | 다시 스타인키 지음, 박소현 옮김 | 민음사

‘낯선 영토를 질주하는 대담한 모험’. 이 책에 바치는 헌사 중 하나다. 여기서 말하는 낯선 영토는 흔히 ‘폐경’으로 불려온 ‘완경’이다.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인 저자가 낯선 영토를 질주하게 된 이유는 56세, 자신에게 찾아온 완경과 그 후에 직면한 분노와 공허 때문이었다. 완경은 육체적 징후에서 시작됐다. 시도 때도 없이 몰려드는 열감, 옷을 흥건하게 적시는 땀, 머릿속을 흔드는 착란, 요동치는 감정, 지긋지긋한 불면의 밤. 그는 스스로 자신이 육체적 한계를 지닌 ‘동물’이라는 것을 알았고, 필멸의 공포를 느꼈다. 그리고 뒤이어 마주한 잔혹한 낙인. ‘완경’은 여성들 스스로도 말 꺼내기를 꺼리는 수치스러운 일이었고, 고쳐야 할 비정상으로 진단돼 호르몬 요법, 약물 요법, 레이저와 시술의 대상이었다. 완경한 여성은 더 이상 쓸모없는 존재로 취급받았다.

스스로 해결되지 않는 이 복잡한 감정과 상태에 당황하고 분노한 그는 이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가 당도한 결론은, 문제는 ‘완경’ 그 자체가 아니라 이를 가부장제 안에서 보는 것이었다. 여성을 성적 매력을 발산하는 생식능력을 지닌 대상으로 보기 때문에, ‘생산 능력’이 사라지는 순간 존재 가치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한 여성이 태어나 사춘기를 거쳐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절절하게 돌아본 뒤, 삶의 마지막 단계에 닿아 있는 완경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아름다운지 치열하게 써내려간다.

그는 여기에 고래, 포유류 중 인간과 함께 완경 이후를 살아가는 고래를 끌어들인다. “아무도 암컷 고래를 쓸모없는 짐승 사체라고 부르지 않는다. 고래들에게 호르몬 요법을 권하는 의사도 없다. 오히려 모계사회 내에서 완경 암컷은 지도자 역할을 맡는다. 더욱더 심각해지는 환경 변화 속에서 암컷 고래들이 거기에 대처해 무리를 꾸려 가는 역량을 보노라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완경이라는 사회적 편견에 갇힌 죄수는 스스로 이야기하기 전에 구출되지 않는다”는 저자는 “딸과 딸 세대를 위해 이 기록을 남긴다”고 말했다. 그는 편견을 넘어선 희망의 가능성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이가 들고, 심지어 약간은 부패하는 단계에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썩는 것 역시 또 다른 형태의 생식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도록 하자. 그것은 새로운 생명이 자라는 데 도움을 준다. 나는 읽기, 쓰기, 봉사하기, 가르치기, 시위하기, 돌보기 그리고 사랑하기를 통해 우리 삶에 필요한 양분을 사냥해 오기를 멈추지 않으리라. 그리고 내가 찾은 결실을 모두에게 나눠 주겠다고 약속한다.” 368쪽, 1만6800원.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
최현미

최현미 논설위원

문화일보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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