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신익 심포니 송 예술감독

이스트먼음대 지휘과 다닐 때
지휘 실습시간 턱없이 부족

학생들과 오케스트라 만들어
보상은 잡채·튀김·김밥 대접

환갑 지나서도 20대 열정 간직
젊은 연주자들에 지금이 기회


최근까지 지휘과 교수로 재직했던 미국 예일대 제자들이 졸업 후 프로 오케스트라에서 직업을 찾으며 마주하는 난관은 지휘자로서의 ‘경험’이 첫째 자격 조건이라는 것이다. 경험 쌓는 일부터 경쟁이다. 지휘과 입학, 지휘 콩쿠르, 음악감독 선정을 위한 심사의 1라운드 관문은 지휘 영상이다. 1차 과정을 통과한 지원자들이 오케스트라를 직접 지휘하거나 필기시험, 각종 인터뷰나 콘서트 등을 통해 최종 선발된다. 오케스트라 앞에 서는 일의 어려움을 말해준다. 예일대는 매년 1명 선발하는 지휘과 오디션에 60여 명이 지원한다고 한다.

“지휘자의 악기는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에 대개는 “지휘봉요” 하고 단순한 대답을 한다.

바이올린 연주자가 되려면 바이올린이 있으면 된다. 오보에 연주자는 종일 연습실에서 악기와 씨름하며 기량을 쌓아갈 수 있다. 지휘자의 경우 악보의 구석구석을 뒤지고 작곡가의 의도를 깊이 있게 파악하는 일이 우선 과정인데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지휘자의 악기는 오케스트라다. 오케스트라 앞에서 실수와 시행착오를 겪고 총보(지휘자가 보는 악보)를 철저히 익혀 가슴에 담아 놓은 사운드를 끌어내기 위해선 온몸의 동작과 기술적이며 효과적인 연습으로 최대의 성과를 내는 훈련 과정이 필수다. 문제는 오케스트라를 사용해 지휘를 실습하는 비용이 크다는 점이다. 개인 연습실과는 다르게 적절한 음향과 환경을 갖춘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 연주자들에게 지급되는 비용이 만만찮아 학교 당국의 제한된 예산으론 지휘과 학생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다. 지휘자 한 명을 배출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33년 전, 선망하던 이스트먼음대의 지휘과 학생으로 입학해 첫 주부터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지휘할 생각으로 꿈에 부풀었다. 기대와 달리, 세계 최고의 지휘과를 가진 음대의 지휘과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오케스트라 지휘실습 시간은 1주일에 20분 정도였다. 며칠 밤을 새우고 준비한 음악을 표현하기엔 부족한 시간이다. 첫 실습 후, 구내식당에서 지휘과 학생들이 모여 짧은 실습시간을 불평하고 있을 때 든 나의 생각은 ‘여기에 앉아 남이 주는 기회를 탓하기보다 기회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다. 기억하기로는, 당시 이스트먼음대 학생이 700명을 넘었다. 양질의 연주자로 차고 넘치는 황금어장에서 좋은 연주자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싶은 열망이 강하게 솟아났다.

이스트먼음대에 오기 전 라이스음대에서도 오케스트라를 구성해 몇 차례 연주했기에 어느 정도 자신은 있었다. 9개 층에 촘촘히 자리한 연습실을 순회하며 문틈으로 흘러나오는 악기 소리를 듣고 우수한 연주자로 판단되면 오케스트라 만들기 작업(?)에 들어갔다. 노크 후 대화를 시작한다. “당신의 연습 과정을 밖에서 들으니 정말 훌륭하다. 나는 세계 최고 지휘자가 되기를 꿈꾸고 있다. 당신과 매주 토요일 연습을 해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고 싶다. 다만, 보상으론 내가 직접 요리한 한국식 점심을 대접하겠다. 우리가 가진 것을 자랑하는 연주보다는 갖고 있지 못한 것을 채워 가는 연주자의 사명을 함께 이루고 싶다.”

첫 연습은 감동과 환희였다. 금요일 밤을 새우며 정성껏 준비한 잡채와 야채튀김, 그리고 김밥은 인기 만점이었다. 연습에 참가하는 연주자가 놀랍도록 늘어갔다. 학교 로비에서 시작한 연주회는 점차 큰 콘서트홀로 옮겨갔고 공영방송 라디오로 전파를 탔다. 이스트먼음대에서 공부하던 4년간 매월 1회 이상의 연주를 하며 획득한 연주 레퍼토리는 지휘과 동료들에 비해 광범위했고, 실전 경험을 통해 오케스트라와 친숙해지는 소득을 거뒀다. 또한, 이 오케스트라에 참여했던 연주자들의 일부는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고 있다.

매년 여름, 미국 콜로라도주 애스펀에서 두 달간 열리는 음악 페스티벌 지휘 코스에 초대받았던 20대 후반에도 오케스트라를 만드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작은 마을을 종횡으로 뛰어다니며 악기를 들고 다니는 연주자들을 포섭해 애스펀 다운타운에서 연주했다.

7년 전, 고국에서 오케스트라를 창립했다. 이제는 한국식 요리 대신 적절한 연주료를 지급하며 다양한 장소에서 다이내믹한 프로그램으로 연주한다. 오케스트라의 이름을 ‘심포니 송, S.O.N.G’으로 정했다. 이를 풀면 ‘S-Symphony, O-Orchestra, N-for the Next, G-Generation’이다.

외딴곳에서 오케스트라를 만들기 위해 24시간 뛰어다녔던 20대 시절의 용감한 초심이 환갑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음은 큰 축복이다. 젊은 연주자들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며 연주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예술의 본질을 자각할 수 있게 해주는 훈련소 역할을 하는 게 오케스트라다. 연주자들의 좌절감은 기회가 없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독수리는 창공을 날아올라야 먹잇감을 찾을 수 있다. 용맹한 독수리도 닭장에 가둬 키우면 닭이 돼 버린다. 최고를 꿈꾸는 젊은 연주자들이여! 지금이 기회다. 감염병으로 모든 것이 축소된 현실에서 진정한 음악에 굶주린 연주자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들과 함께 창공을 날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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