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훈 산업부 차장

최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민간기업 총 109곳(응답 기준)을 대상으로 실시한 반(反)기업정서 인식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인식조사에 응한 기업 93.6%가 반기업정서가 존재한다고 대답했다. 임직원 1000명 이상 대기업의 체감 반기업정서 수준은 83.8점(100점 만점)에 달했고, 300인 미만 기업의 체감 반기업정서도 66.0점이었다.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발표되는 ‘트러스트 바로미터’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기업에 대한 신뢰도는 2016∼2018년 3년 연속으로 28개국 중 ‘꼴찌’였다. 2019년엔 26개국 중 25위, 지난해에도 24위에 그쳤다.

물론 반기업정서는 과거에 기업들이 저지른 잘못에 기인한 바가 크다. 아직도 일부 기업에 남아 있는 그릇된 관행 역시 뿌리 뽑아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이제는 많은 기업이 준법과 윤리 경영에 신경을 쓴다. ‘나쁜 기업’으로 낙인찍히면 사업을 할 수 없는 시대다. 그런데도 기업·기업인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비자금, 일감 몰아주기, 사익편취 등 논란은 기업을 욕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이경묵 서울대 교수는 과도한 증여세·상속세가 불법을 부추긴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 정경유착·뇌물수수는 정치권력이 경제 위에 군림해서 생기는 범죄다.

문제는 기업에 대한 막연한 반감이 규제 일변도 법안과 정책의 토대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반기업정서는 기업에 대한 규제로 이어진다. 현 정부 들어 산업안전보건법 강화, 화학물질관리법 강화, 상법·공정거래법·노동조합법 등 개정, 중대재해 처벌법 제정 등이 이뤄졌고, 이익공유제와 유통산업 규제 법안들이 대기 중이다. 이와 관련, 손경식 경총 회장은 최근 ‘한국의 반기업정서, 원인진단과 개선방안’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주최하며 “기업 규제적 입법이 강행되는 배경에는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반기업정서가 크게 자리 잡고 있다”며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기반으로 입법·사법·행정 각 분야에서 기업에 부담을 주는 사례가 많이 발생하고, 기업이 가혹한 비판을 받는 경우도 있다”고 토로했다. 반기업정서는 내년 대통령 선거 등 ‘정치의 계절’ 도래와 맞물려 더욱 극심해질 가능성이 크다. 양세영 기업사회연구원장에 따르면, 대선 정국에서는 대기업 개혁 이슈와 대·중소기업 관계, 법인세 등이 쟁점이 되면서 기업에 대한 국민의 비판적 관심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에 정치인들은 반기업정서를 정략적으로 활용하고, 기업규제 공약을 쏟아내게 된다는 것이다.

반기업정서에 편승해 양산된 규제는 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추락시키게 된다. ‘뭘 해도 욕만 먹는다’는 느낌을 받는 기업가들은 의욕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새로운 투자나 기술 개발, 고용 등 기업 활동이 위축돼 경제의 지속 성장에 악영향을 미칠 게 뻔하다. 미국은 정부 지원을 받아 민간 주도로 경제교육, 청소년 창업지원 등 프로그램을 통해 반기업정서를 상당 부분 없앴다. 영국은 ‘엔터프라이즈 인사이트’라는 정부기관을 설립, 민관협력을 통해 올바른 기업관을 정립해가고 있다. 경제 쇠퇴를 막으려면, 더 늦기 전에 반기업정서 해소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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