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빈센조’ ‘모범택시’ 시청률 10%대 흥행
부패한 경찰관·갑질 사장 등
법 어기고도 교묘히 빠져나가
공권력 향한 불신이 흥행배경
“우리는 악을 악으로 처단한다”
“복수 원하면 대행해드립니다”
‘다크 히어로’에 통쾌함 느껴
전문가 “대리만족 선사하지만
위법행위·모방범죄 부를 우려”
“세상에서 가장 강한 주먹은 뒤에서 때리는 주먹이다. 치사한 승리는 상대방에게 모멸감을 줘서 효과가 좋다.”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빈센조’의 주인공인 이탈리아 마피아 빈센조가 재벌가의 종 노릇을 하는 검사 출신 변호사를 낭패에 빠뜨린 후 “어느 마피아 집안의 가훈”이라며 한 말이다. 함정 수사를 펼치거나 독수독과(毒樹毒果) 이론에 따라 위법한 방법으로 증거를 수집할 수 없는 공권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빈센조의 통쾌한 복수에 시청자들은 10%가 넘는, 높은 전국 시청률로 화답하고 있다.
지난 10일 처음 방송된 SBS ‘모범택시’ 역시 사적 복수를 대행해주는 택시기사의 이야기를 담는다. “공권력의 사각지대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나쁜 놈들을 단죄한다. ‘다크 히어로’라는 설정이라 배트맨 같다는 생각도 든다”는 주연배우 이제훈의 말처럼, 대중은 ‘한국형 배트맨’의 등장을 반기는 눈치다. 이 드라마는 방송 첫 주 시청률 13.5%를 기록한 데 이어 4회 만에 15%를 돌파했다. 왜 대중은 이처럼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사적 복수에 열광할까?
◇악으로 악을 다스린다!
이탈리아 마피아의 변호사로 살아온 빈센조(송중기 분)는 악인이다. 납치, 감금, 폭행뿐만 아니라 방화를 일삼는다. 1회에서는 배신한 동료의 대농장에 불을 지르고 부패한 재벌의 창고에 기름을 부어 통째로 날리는 식이다.
그가 한국으로 돌아온 이유는 상가 건물 지하에 감춰둔 금괴를 찾기 위해서다. 그러다 뜻하지 않게 상가에서 내쫓길 위기에 처한 상인들과 손을 잡으며 의도와 상관없이 ‘서민의 편’이 된다. 다크 히어로로 거듭나게 된 근원을 찾아봤을 때, 빈센조는 정의보다는 사익을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배트맨과 다른 질감이지만, 결과적으로 법으로는 단죄할 수 없는 재벌과 그들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공권력과 법을 응징한다는 측면에서 다크 히어로의 면모를 갖춰 간다.
‘모범택시’는 우리가 곁에서 쉽게 접하는 택시기사를 다크 히어로로 설정해 보다 현실감 있게 다가간다. 택시운수업을 가장한 복수대행업체 무지개운수의 사훈은 로마서 12장 21절에서 따온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다’다. 그들은 ‘죽지 말고 복수하세요. 대신 해결해 드립니다’라고 쓴 명함을 억울한 이들에게 건넨다.
주인공 김도기(이제훈 분)는 살인마에게 어머니를 잃은 후, 체포된 살인마가 감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듣고 제대로 단죄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리다가 사적 복수에 가담하게 되는 인물이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지적장애 3급을 가진 장애인을 학대하면서도 사회적 기업의 탈을 쓴 인면수심 젓갈공장 사장 일당, 그리고 도움을 요청하는 장애인을 다시 사장 앞에 데려다주고 뒷돈을 챙기는 경찰을 소재로 삼아 공분을 자아냈다.
‘빈센조’가 법으로 다스릴 수 없는 위정자들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마피아의 방식으로 처단한다면, ‘모범택시’는 솜방망이 처벌이라 질타받는 법에 기대지 않고 주먹으로 응징한 후 사설 감옥에 가둬 그들의 잘못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치르게 한다.
‘궁금한 이야기 Y’와 같은 시사 프로그램을 연출해 강력 사건에 관심이 많은 박준우 PD는 “시사 프로그램에서 많이 봤던 소재들, 학교폭력이나 성 착취 동영상 같은 사건들도 등장한다”며 “‘모범택시’는 다크 히어로 액션극이다. 범죄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따뜻한 작품이 될 것”이라고 기획의도를 설명했다.
◇사적 복수, 정당화될 수 있을까?
사적 복수에 열광하는 대중 심리의 기저에는 경찰, 검찰, 법원과 같이 범죄를 막고 죄를 묻고 벌하는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법의 허점을 이용해 벌을 받지 않는 ‘법꾸라지’들과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법을 악용하는 변호사, 대중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판결과 짧은 형기를 마치고 금세 사회로 돌아온 전과자들이 재차 범죄를 저지르는 상황을 지켜보는 대중은 분노를 표출한다.
지난해 12월 출소한 아동성범죄자 조두순의 출소 당시 풍경은 이를 잘 보여준다. 피해 아동에게 영구적 장애를 안긴 범죄자가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으로 감경받아 12년 만기 복역 후 출소해 다시 살던 곳으로 돌아오자 피해 아동 가족이 오히려 이사 가야 하는 부조리한 상황이 벌어졌다. 그가 출소하면 사적 복수를 가하겠다며 찾아간 막무가내 유튜버들이 지지를 받고 그들이 촬영한 영상은 엄청난 조회 수를 기록했다. 그러자 불상사를 막기 위해 조두순 자택 주변에 경찰관 100여 명이 배치돼 공권력이 낭비되고 있는 상황을 놓고 또다시 대중은 성토했다.
“사적 복수를 하겠다”는 시도가 가져온 결과는 또 다른 피해자 양산이었다. 당시 유튜버들의 고성방가, 건물침입, 폭력 행사, 경찰 업무 방해 등으로 조두순 출소 하루 만에 입건된 사람만 8명, 접수된 민원이 98건이었다. 안산시는 유튜버들이 무분별하게 촬영한 영상 때문에 인근 주민들의 얼굴이 고스란히 노출돼 초상권 침해 등 사생활 피해가 크다며 구글 측에 삭제 요청을 했으나 곧바로 조치가 이뤄지지 않다가 석 달여 만에 삭제됐다.
개인이 개인을 벌하는 것은 명백한 위법이다. 게다가 사적 복수를 행하는 이가 객관적 사실에 근거해 범죄자를 엄단한다고 볼 수도 없고, 만에 하나라도 애먼 이를 가해자로 규정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결국 사적 복수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은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만 가능한 판타지라는 의미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법이 처벌하지 못하는 권력자를 비롯, 대중이 느끼기에 적은 형량을 받는 악인들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사적 복수를 지지하는 방식으로 표출되는 것”이라면서도 “지나치게 사적 복수를 합리화하는 방식으로 그리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이를 본 이들이 모방 범죄를 일으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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