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부정권때도 존재했던 ‘시사개그’…대선 1년앞인데 ‘전멸’

정파적 색채 노골화한 팟캐스트
덩치 커진 유튜브 논객들에 밀려
전문가 “진영논리에 중립성 상실”

TV의 영향력 저하가 최대 요인
방송사들 민원 두려워 엄두못내
비뚤어진 팬덤정치도 영향 미쳐


대선이 약 1년 앞으로 다가왔다. 통상 이즈음이면 정치 풍자 개그가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하지만 TV에서 정치 풍자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시도하는 이도 없고, 찾는 이도 없다. 왜일까?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2012년, 케이블채널 tvN ‘SNL코리아’의 ‘여의도 텔레토비’는 방송가를 넘어 정가까지 들썩이게 만들었다. 각 캐릭터를 또(박근혜), 화나(문재인), 구라돌이(이정희), 안쳤어(안철수)라 칭하며 대선 주자들에 빗대 현실 정치를 절묘하게 비꽜다. 5년 후 제19대 대통령 선거 때도 ‘SNL코리아’는 돋보였다. 대선 후보들을 당시 인기를 끌던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에 대입해 문재수(문재인), 레드준표(홍준표), 안찰스(안철수), 심불리(심상정)로 패러디했고, 각 후보가 이를 연기하는 출연진과 직접 대면하는 깜짝 만남도 성사됐다. 이 외에도 KBS 2TV ‘개그콘서트’는 ‘사마귀 유치원’ ‘민상토론’ ‘국제 유치원’ 등 다양한 패러디 코너를 통해 권력을 견제하고 비판했다. 하지만 2021년 4월, 시사·보도 프로그램을 제외하면 정치를 소재로 삼거나 이를 풍자하는 콘텐츠는 찾아보기 어렵다.

(왼쪽 위 사진부터 반시계 방향으로)‘여의도 텔레토비’와 ‘네로 25시’ ‘민상토론’ 등은 촌철살인 패러디로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왼쪽 위 사진부터 반시계 방향으로)‘여의도 텔레토비’와 ‘네로 25시’ ‘민상토론’ 등은 촌철살인 패러디로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TV에서 더 이상 정치 풍자를 볼 수 없게 된 주된 요인 중 하나는 TV 영향력 저하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TV는 대중이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었다. 하지만 다매체 시대에 TV 시청률이 급감하며 정치 풍자의 중심 역시 팟캐스트와 유튜브 등으로 옮겨 갔다.

18대 대선 때 활약한 ‘나는 꼼수다’(나꼼수)가 대표적이다. 팟캐스트라는 매체 특성을 활용해 TV에서 다룰 수 없던 표현을 구사하고 위험수위를 넘나들며 정파적 색채를 드러내 특정 정당 지지층과 절대적 호응을 이뤘다. ‘나꼼수’의 주축인 김어준이 진행하는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나꼼수’를 제도화한 버전이라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유튜브에는 ‘정치 논객’을 자처하는 이들의 채널이 즐비하다. 수십만∼수백만 명의 구독자를 거느린 채널들은 선거철뿐 아니라 각종 정치적 이슈가 등장할 때마다 덩치를 키워왔다.

문제는 ‘중립성’이다. 대다수 정치 팟캐스트나 유튜브 채널에서는 균형을 찾기 어렵다. 진보 혹은 보수라는 색깔이 분명해 정확한 분석보다는 구독자들이 ‘듣기 원하는’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이들을 건강한 정치 풍자 프로그램으로 볼 수 없는 이유다.

(오른쪽 위 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 개그맨 최국, 김영민, 강성범은 유튜브에서 정치 풍자 채널을 진행하고 있다.
(오른쪽 위 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 개그맨 최국, 김영민, 강성범은 유튜브에서 정치 풍자 채널을 진행하고 있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대다수 팟캐스트나 유튜브 정치 채널들은 노골적으로 진영 논리를 앞세운다. ‘나꼼수’가 그 시작”이라며 “예전에는 정치권력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았고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TV에 등장해 정치 풍자를 하는 이들에게 박수를 쳤지만 요즘은 중립적인 비판조차 진영 논리로 따져 비난한다. 이러니 개그맨 등 유명인들이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 더욱 어려워졌다”고 꼬집었다.

방송사 내부적으로도 정치 풍자 프로그램을 제작할 의지를 찾기 어렵다. 지상파나 종합편성채널은 방송법을 준수해야 하고, 각종 민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일례로 2016년 ‘개그콘서트’의 코너 ‘1대1’에 출연한 개그맨 이상훈은 어버이연합으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피소됐다가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유민상이 진행하던 ‘민상토론’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행정지도 처분을 받았다.

이 같은 후폭풍을 감수해야 하는 것에 비해 ‘돈이 안 된다’는 현실적 상황은 정치 풍자를 꺼릴 수밖에 없는 실질적 요인이다. 대다수 방송사는 광고 수급을 통해 제작비를 메우고 수익을 낸다. 하지만 TV 정치 풍자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고, 오히려 반발만 가져올 수 있다는 내부적 판단 때문에 정치 풍자 프로그램을 만들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의미다.

KBS 관계자는 “정치 풍자 코너를 자주 소개하던 ‘개그콘서트’가 저조한 시청률과 낮은 광고 판매 때문에 폐지됐듯, 정치 풍자 프로그램이 시청률 상승과 광고 수급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최근 시청자들이 광고주를 압박해 드라마 ‘조선구마사’를 폐지한 사례처럼, 민감한 정치적 사안을 건드렸다가 감당 못 할 후폭풍을 가져올 수 있다는 두려움이 크다. 정치적으로 누군가를 비판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지지자들의 반발을 가져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정치 풍자가 사라진 또 다른 요인 중 하나로 ‘팬덤 정치’를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은 추종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에 대한 긍정적인 뉴스만 취하고, 부정적인 뉴스는 철저히 배척한다. 소위 ‘○빠’라 불리는 지지층이 여기에 포함된다. 시사 개그를 자주 구사하는 개그맨 황현희는 2019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한쪽 편을 들다 보면 다른 한쪽의 항의를 받게 되는 상황이 벌어져 ‘웃기려고 하는’ 회의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욕을 안 먹을까’ 고민하는 회의를 하게 된다. 어떤 말을 하든 절반에게 욕을 먹는 상황이 계속 벌어진다”며 “방송 내용보다는 ‘내 편과 아닌 것’ ‘우리 편이냐 아니냐’를 주로 많이 따지는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곰곰이 따져보면 서슬 퍼런 군부 정권 때도 정치 풍자는 존재했다. 요즘처럼 TV 속 정치 풍자가 전멸한 적은 없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과거 정치 풍자는 살아 있는 정권과 같은 기득권으로부터 탄압받는 것을 고민하면서도 촌철살인 입담으로 시청자들의 속을 뚫는 통쾌함과 재미를 줬다. 하지만 최근에는 정치인들이 SNS를 통해 즉각적이고 원색적인 반응을 보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 성향이 다른 시청자들도 집단으로 공격해오기 때문에 더욱 정치 풍자를 꺼리는 문화가 형성됐다”며 “많은 이가 SNS를 통해 쉽게 정치적 발언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음에도 오히려 소신 있는 행보가 줄어든 이유”라고 분석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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