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원작 소설가 박상영

360도 회전의자 무대 위 배치
배우 동선따라 참여하듯 관람

“다채로운 플래시백 등 실험
원작 순도 100% 가깝게 재현
性소수자, 보편적 존재로 묘사”


“소설과 연극의 장르적 차이 때문에 의미가 ‘누락’되거나 극이 지루해지면 어쩌나 걱정했어요. 하지만 막상 공연을 보니 (객석을 무대 위에 배치한) 연출과 다채로운 플래시백으로 원작을 ‘순도 100%’에 가깝게 재현했더라고요. 내가 쓴 대사와 장면이 배우를 통해 살아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최근 개막한 국립극단 신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는 박상영(사진)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서울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내달 10일까지 펼쳐지는 연극은 칸영화제 진출을 꿈꾸는 무명의 ‘박 감독’과 현대무용을 전공한 백수 ‘왕샤’의 로맨스를 그렸다. 플롯부터 대사까지 원작의 큰 흐름을 따라가는 이 작품에서 주목할 만한 건 과감한 형식적 실험이다. 관객들은 ‘객석’이 아닌 무대 위에 놓인 20개 안팎의 ‘회전의자’에 앉아 연극을 본다. 의자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배우를 따라 원하는 방향으로 360도로 의자를 돌려가며 ‘참여’하듯 관람한다.

2016년 등단 이후 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와 ‘대도시의 사랑법’을 펴낸 박상영은 한국 퀴어 문학에 일상의 유쾌함과 활기를 부여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첫 장편소설 ‘1차원이 되고 싶어’의 막바지 작업을 진행 중인 그는 15일 문화일보와 전화 인터뷰를 한 뒤 다음 날 개막 첫 공연을 본 소감을 이메일로 전해왔다.

“성(性) 소수자를 ‘신파를 위한 대상’이 아닌 ‘보편의 온도’로 살아가는 존재로 묘사하고 싶었습니다. 박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품평하는 영화제 심사위원들을 향해 이렇게 냉소하죠. ‘당신들에게 평범하고 발랄한 동성애자들은 현실성이 없고 순전히 다 지어낸 것 같겠지. 애초에 보통의 존재로 생각한 적조차 없었겠지.’ 이 말엔 극 중 영화와 소설이 함께 지향하는 바가 담겨 있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보편의 사랑’이라는 극 중 영화 제목처럼 지극히 보편적인 사랑 이야기를 그리려 했다는 얘기다. 객석을 무대로 옮겨오는 아이디어 역시 ‘성 소수자는 우리 곁에 있는 보통의 존재’라는 원작의 주제의식을 살리기 위한 장치라 할 수 있다.

연극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에서 자이툰 부대에 파병을 간 인물들이 벽화를 그리고 있다.  국립극단 제공
연극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에서 자이툰 부대에 파병을 간 인물들이 벽화를 그리고 있다. 국립극단 제공

박 감독과 왕샤는 이라크 자이툰 파병부대에서 처음 만난다. 두 사람은 서양화를 전공한 C, 애니메이션 학과생 B 등과 함께 마을 재건을 위한 벽화 제작 분대에 투입되는데, C가 한국에 돌아와 차리는 식당 이름이 ‘자이툰 파스타’다. 작가는 왜 한국의 어느 부대가 아니라 이라크 자이툰을 배경으로 설정했을까. 박상영은 “벽화를 그리다 폭탄 테러가 일어나 황급히 도망가야 하는 ‘전쟁터’를 배경으로 소수자의 ‘투쟁’ 같은 현실을 보여주려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징병제인 한국의 남성 국민이 ‘전투를 하기 위한 존재’로 기능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보편의 사랑’이라는 주제처럼 한국에만 국한되지 않는 ‘보편성’을 공간에 담았다”고 덧붙였다.

연극에서 청춘의 에너지를 거침없이 분출하던 인물들은 끝내 소망하던 바를 이루지 못한다. 박 감독은 칸영화제는커녕 다 쓰러져가는 영화사 직원으로 밥벌이하고 있으며 무용에 재능이 없음을 일찌감치 깨달은 왕샤는 외국어 학원을 전전하며 승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다. 두 사람은 ‘술도 안 시키고 도우미도 안 불렀다’는 이유로 서비스를 주지 않은 노래방 주인을 골탕 먹이려다 뒤통수만 맞는다. 그러고는 이렇게 자조한다. “우리는 세상의 작은 점조차 되지 못했다! (중략) 이토록 철저한 실패는 영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유쾌한 대사의 향연 뒤에 나오는 씁쓸한 결말은 원작자 박상영의 세계관과 그대로 맞닿아 있다. “누군가는 비관적이라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는 현실적이고 ‘투명한’ 관점이라 생각해요. 모든 걸 잃어도 살아야 하는 게 인간이고, 한없이 행복해 보이는 인간의 마음속에도 결핍이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능력 없는 게이라서 슬픈 게 아니라 인간은 근본적으로 한계를 지닌 존재입니다.”

웹진 주간 문학동네에 연재한 첫 장편 ‘1차원이 되고 싶어’는 앞선 두 편의 소설집과 분위기가 다소 다르다. ‘퀴어 요소’를 끌어오되 대구의 한 연못가에서 시체가 떠오르면서 시작하는 이 작품은 스릴러의 외피를 쓰고 있다. 박상영은 “2002년을 배경으로 외고 입시반 학생들의 사랑과 배신, 폭력을 그린 작품”이라며 “후반부를 고쳐 올여름 단행본으로 출간할 계획”이라고 했다.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나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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