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식 선생님

어떤 한 사람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빗대어 우리는 흔히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은 그 안에 가슴을 울리는 깊은 감동과 극적인 반전이 있다는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텔레비전을 켜면 여러 채널에서 다양한 드라마가 쏟아져 나온다. 사람들은 각자 취향에 맞는 드라마를 골라보며 자신의 팍팍한 삶에 단비를 뿌리듯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대한민국만큼 드라마가 방송사 프로그램 편성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나라도 없다고 하는데 그 사실은 오랜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어 보인다.

어렸을 적부터 나는 드라마를 많이 보며 자랐다. 그래서인지 한때 나는 운명처럼 드라마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본격적인 작가 수업을 한 적이 있다. 힘들고 지친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드라마를 쓰겠다며 매일 기도도 했다.

그리고 운 좋게 한국방송작가협회 교육원에서 당시 KBS 드라마 제작국장이셨던 최상식 선생님을 만나 뵐 수 있었다.

기초반과 연수반 과정을 마친 후에야 어렵게 수업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던 최 선생님의 커리큘럼은 모든 교육생이 듣고 싶어 하는 1순위 강좌이기도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시 선생님께서는 PD 출신의 현역이기도 하셨고, 일선에서 경험한 드라마투르기를 그대로 제자들에게 전수해 주시니 그 인기와 존경은 말할 필요가 없었다. 나 역시 기초부터 과정을 착실히 연마한 후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수업을 듣게 됐는데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첫날부터 선생님께 호된 꾸지람을 들은 난 실망 정도가 아니라 작가로서 나의 재능에 대해 깊은 절망감을 느끼고 말았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그때만큼 심하게 야단을 맞아본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등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어디 쥐구멍이라도 있었다면 곧장 들어가 나오고 싶지 않은 상황이었다.

나의 작품에 대한 냉혹한 해체와 신랄한 혹평은 한 시간이 넘게 이어졌고, 그런 제자가 조금은 안쓰러우셨는지 선생님께서는 ‘그래도 작가가 주제를 놓고 고민한 흔적은 있어 보인다’는 말씀으로 그날의 수업을 마무리하셨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고도 남을 세월이 흘렀지만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제자들의 작품에 대해 한 치의 관용도 허락하지 않으셨던 선생님의 엄격함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얼마 전, 종편 채널의 한 프로그램에 선생님께서 출연하신 걸 우연히 보게 됐다. 방송국을 은퇴하신 후 대학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과거 제작 현장에서의 에피소드 등을 이야기하고 계셨다. 방송을 보고 있자니 20여 년 전, 선생님께 수업을 듣던 시간이 문득 그리워졌다.

드라마를 천착하며 치열하게 습작하던 제자들을 위해 퇴근 후 식사도 거른 채 한걸음에 달려와 주셨던 선생님, 인간의 삶을 그리는 드라마는 인생의 축소판이며 그래서 드라마에는 사실보다 더한 진실이 있어야 한다고 힘줘 말씀하셨던 선생님. 돌이켜보면 맘껏 꿈을 꾸며 글을 쓰던 그때의 시간들이야말로 내 인생에서 가장 아프고도 아름다운 시절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만개했던 화려한 벚꽃들이 야속하게도 작별을 얘기한다. 하지만 꽃잎을 밀어내는 파릇한 이파리 안에 벚나무의 강인한 초록빛 생명력이 더해지듯 세월이 흘렀어도 난 드라마 같은 진실한 삶을 꿈꾸며 살아간다.

오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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