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규 변호사 前 부산지법 부장판사

최근 법원은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이들의 청구를 각하하는 판결을 했다. 오랜 세월 자신들의 고통을 알리고 보상받기 위해 노력해 온 피해자들로서는 이번 판결로 받은 실망감이 상당할 것이다. 또, 그 실망감을 국민 모두 공감할 것이다. 원망이 법원으로 향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그런 원망을 거스르면서 이 판결을 옹호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분명히 할 점은, 이 사건에서 법원은 단 한 번도 피해자들의 피해가 인정되지 않는다거나, 과거 일본제국의 행위가 정당했다고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판결은 ‘피고(일본)에게 국가면제를 인정한 것은 대한민국과 피고 사이에 이뤄진 외교적 합의의 효력을 존중하고, 추가적인 외교적 교섭을 원활하게 하기 위함이지, 일방적으로 원고들에게 불의한 결과를 강요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법원은 각하한다고 판결했지만, 단 한 번도 피해자들의 피해가 의미 없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피해의 회복이 미흡했고, 그 회복을 위해 대체적인 권리구제 수단을 적극적으로 강구하기를 권고했다. 다만, 국제법상 요구되는 주권면제의 원리 때문에 법원이 나서서 판단하는 게 법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을 뿐이다.

주권면제라는 것은 간단히 말하면 A국이 B국을 자신의 법정에 세울 수 없다는 의미다. 모든 국가는 독립적이고 평등하게 주권을 가지는데 어느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자신의 법정에 세우면 그 자체로 주권에 대한 침해로 이해될 수 있다. 이번 판결은 이러한 국제적 질서를 존중한, 지극히 법원리에 충실한 판결이다. 내수용 판결은 국내에선 환호를 받을 수 있지만, 국경을 한 발짝만 벗어나면 국제 기준에 못 미치는 판결로 평가될 수 있다. 법이 때로는 피해자에게 부당하게 느껴지더라도 결국 공동체 일반에 수용되는 것은 예견 가능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해자 감정의 진폭에 따라 이것을 함부로 움직일 수 없다.

그렇다고 이런 부당함을 조절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피해 보상은 반드시 재판에 한정될 필요가 없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외교적 노력 등의 방법으로 재판으로 거둘 수 없는 결과도 얻을 수 있다. 정부·국회·법원이 나뉘어 있지만, 국민의 권익을 구제하는 일에 선후나 책임 회피가 있을 수 없다. 모두 적극적인 주체가 돼 노력하는 게 국가의 책무다. 그런데 비겁하게도 정책을 결정하고 외교적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대통령과 정부는 법원 뒤에 숨어 미동도 하지 않았다.

소송 요건을 충실하게 해석해 판단한 법원에 잘못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이런 경우는 정책적·입법적 해법이 더 효율적이고 바람직할 수 있는데, 현 정부 들어서 그런 노력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정치적 지지세를 확보하기 위해 반일 감정 조장이 필요할 때는 맘껏 피해자들의 분노를 활용하면서, 정작 그 피해자들에게 필요한 정책적·외교적 노력은 크게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이제 위안부 문제는 법원보다는 정부가 풀어야 한다. 법원은 소송 요건이 미흡한데 굳이 나서서 판단하려고 요건을 완화하는 태도를 자제해야 한다. 법관이 판결로 모든 분쟁을 해결할 수 있다고 함부로 접근하는 것도 교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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