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여정의 55년 연기인생

‘절정’ 달리다 결혼 후 미국행
10여년간 연기 경력 단절도

배역 크기에 연연하지 않고
영화·드라마 가릴 것 없이 활동
임상수 감독 만나 파격 변신
“돈 필요할때 연기 잘돼”너스레

연기력 못지 않은 예능감각
윤식당·윤스테이서 존재감 뽐내


원로(元老). 한 가지 일에 오래 종사해 경험과 공로가 많은 사람을 뜻한다. 그래서 각종 시상식에서 원로라 불리는 이들이 주로 받는 상은 공로상이었다. 통상 30∼40대 때 전성기를 보내고 하락기인 50대를 거친 후 60∼70대가 되면 ‘원로’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한다.

하지만 윤여정은 다르다. 1947년생인 그의 전성기는 지금이다. 1966년 19세 나이로 데뷔한 후 배우로서 50여 년의 굴곡진 삶의 변곡점은 바로 이 순간, 가장 높은 곳을 가리키고 있다. 2018년 1월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개봉을 앞두고 문화일보와 나눈 인터뷰에서 “내가 사주를 봤는데 ‘말년이 좋다’더라. 위안을 얻었는데 진짜 나아지더라. 얼마나 좋을지 지켜보자”고 말했던 그의 바람은 현실이 됐다.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지 않던 시기, 윤여정은 소위 말하는 재원(才媛)이었다. 이화여고를 졸업한 후 한양대 국문과에 진학해 공부했다. 당시 등록금을 마련하려고 김동건 아나운서가 진행하던 프로그램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공채 탤런트 시험을 보라”는 권유를 받았고, 1966년 TBC에 합격해 공채 3기 탤런트가 됐다. TBC에서는 빛을 보지 못했지만 1969년 MBC로 둥지를 옮긴 후 두각을 보이기 시작했다.

24세가 되던 1971년은 윤여정에게 중요한 해였다. MBC 사극 ‘장희빈’의 타이틀롤을 맡아 단박에 스타덤에 올랐고, 같은 해 거장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화녀’의 주인공 자리를 꿰찼다. 이 작품으로 흥행을 일군 것뿐만 아니라 시제스 국제영화제와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까지 거머쥐었다. 이듬해에는 ‘충녀’에도 출연하며 김 감독의 뮤즈로 거듭났다.

승승장구하던 윤여정은 1974년 가수 조영남과 결혼 후 미국으로 가면서 연기 경력이 단절됐다. 그런 그가 한국으로 돌아온 것은 10년 후인 1984년이다. “쌀독에 쌀이 있던 때보다 떨어졌던 때가 더 많았다”고 당시를 회상하던 윤여정이 두 아들을 키우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하고 다양한 직업을 경험하며 익힌 영어가 30년이 지난 후 그의 해외 진출에 밑거름이 된 것은 지독한 아이러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윤여정에게 주어진 역할은 크지 않았다. 당시 시대 분위기는 ‘이혼녀’를 곱게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윤여정 역시 과거의 영광을 곱씹으며 배역의 크기에 연연하지 않았다. 하지만 배우로서 그의 가치를 알아본 김수현 작가와 노희경 작가가 윤여정의 손을 잡았다. 김 작가가 집필하고 박철수 감독이 연출한 ‘에미’(1985)로 재차 연기력을 입증했고, 이후 김 작가의 히트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1991)와 ‘목욕탕집 남자들’(1995)로 대중성을 입었다. 당시 윤여정이 ‘사랑이 뭐길래’에서 전화를 받으며 “홍은동입니다∼”고 말하는 대사는 유행어가 됐다.

이후 안정적으로 연기 활동을 이어오던 윤여정의 인생 그래프는 2003년 임상수 감독과 만나며 다시 요동친다. 그해 출연한 ‘바람난 가족’에서 바람난 시어머니라는 파격적 캐릭터를 시치미 뚝 떼고 소화했다. 높은 노출 수위 때문에 다른 배우들이 거절했던 이 배역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그는 “당시 집수리를 하려면 돈이 필요했다. 나 역시 꺼려졌지만 돈이 너무 급해 결국 수락했다. 배우는 돈이 필요할 때 연기를 제일 잘한다”고 말했다. 그때 그의 나이 56세였다. 윤여정의 이런 가감 없는 직설과 농담은 연일 화제가 되는 ‘윤여정 어록’의 연장선이다.

임 감독은 윤여정을 계속 변주했다. 영화 ‘하녀’(2010)와 ‘돈의 맛’(2012)의 주연배우로 잇따라 섭외했고, 두 작품 모두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돼 윤여정은 뤼미에르 극장의 레드카펫을 밟았다. 이 자리에 서기 위해 여배우는 드레스를 입어야 한다. 드레스 협찬 여부에 대한 질문에 ‘하녀’ 때는 “나처럼 늙은 여배우에게는 협찬 안 해준다”던 그는 ‘돈의 맛’ 때는 두 벌 협찬받았다며 “칸 한번 다녀오니 대우가 달라지더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편견을 향해 일침을 가하고, 스스로 편견을 깨나가는 게 윤여정식 행보인 셈이다.

이후 ‘계춘할망’(2016)과 ‘죽여주는 여자’(2016), ‘그것만이 내 세상’(2018)과 ‘찬실이는 복도 많지’(2020) 등 영화의 크기를 가리지 않고 활발한 활동을 펼치던 그는 독립영화 ‘미나리’를 선택했다. 저예산 영화인 탓에 “내가 고생할 것을 알고 있었다”면서도 윤여정은 대본을 읽은 뒤 하나의 질문을 던진 후 출연을 결심했다. “이게 감독 자기 이야기니?” 실제 미국 이민자 가정에서 나고 자란 정이삭 감독의 정성이 깃든 시나리오에 반한 것이다. 그리고 정 감독은 숱한 시상식을 휩쓴 수작을 빚으며 윤여정의 선택에 화답했다.

윤여정이 빛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한 축이 빼어난 연기력이라면 다른 한 축은 인간적 매력이다. 숱한 시상식을 휩쓴 소감을 묻는 말에 “상패는 1개만 받아 아직 실감을 못 하고 있다” “‘미국 땅이 넓으니 상도 많구나’ 싶었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이달 중순 영화 ‘미나리’로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후 “콧대 높은(snobbish) 영국인에게 이 상을 받아 기쁘고 감사하다”고 뼈 있는 농담을 건네는 장면에서는 박수와 웃음이 터진다.

게다가 윤여정은 간간이 예능을 곁들이며 새로운 방식으로 대중에게 다가갔다. ‘꽃보다 누나’(2013)를 통해 확인된 그의 예능 감각은 ‘윤식당’(2017)과 ‘윤스테이’(2021)로 이어졌다. 74년 삶을 관통하며 좀처럼 쉼표를 찍지 못하고 내달리는 그를 항상 요동치게 하는 동력은 무엇일까? 그는 지난 13일(현지시간) ‘미나리’의 북미 배급사 A24와 나눈 인터뷰에서 명확한 답을 내놨다. “내 두 아들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나는 싱글맘이 됐고 그 이후 정말 배우가 된 것 같다. 나는 우연히 배우가 됐는데 ‘화녀’를 통해 명성을 얻었고 당시에는 정말 내가 좋은 배우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결혼과 이혼을 한 후 싱글맘이 됐는데, 두 아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어떤 역할이든 다 했다. 두 아들 덕분에 이 같은 커리어를 쌓을 수 있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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