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는 홍석주 선생이 ‘학강산필’에서 연독(後漢人)의 글을 소개한 내용이다.
“동틀 무렵이면 머리를 빗고서 사랑채에 앉곤 했다. 아침에는 ‘주역’과 ‘서경’ ‘주례(周禮)’ ‘춘추’를 외웠다. 저녁에는 남쪽 다락에서 시를 읊조리고, 백가(百家)도 틈틈이 익혔다. 이때는 하늘이 덮어주고 땅이 받쳐주는 것도 몰랐고 세상에 사람이 있는 줄도, 내게 몸뚱이가 있는지조차도 알지 못했다. 비록 고봉(高鳳)이 책 읽다가 폭우가 쏟아지는지도 모르고 (아내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그는 마당에 널어 둔 겉보리가 모두 떠내려가게 했음) 고점리가 축을 연주할 때 곁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했다고 해도 내게 견주면 댈 것도 아니었다”고 연독은 ‘여이문덕서(與李文德書)에 적고 있다. 독서삼매에 들어 자기 자신마저도 잊는다. 홍 선생은 어려서 읽은 이 연독의 글을 왜 평생토록 줄줄 외웠을까?
독서는 단순히 글자가 눈을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뚫고 들어가 내적 기질을 변화시키고 영혼의 성숙을 도모한다. 그러므로 책 읽기 전과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선생은 ‘연독의 독서법’을 통해 우리에게 독서의 효용을 일러준다. “책을 읽고 스승과 공부한 뒤로는 불효(不孝), 불충(不忠)에 떨어진 적 없고 윗사람과 사귈 때는 아첨하지 않았으며 아랫사람과 사귈 때는 깔보지 않았다”는 대목에 이르러 나는 밑줄을 긋고 만다. 요즘 독서는 정좌해 내가 책 속으로 떠나는 몰입이 아니라, 일하는 동안에도 음성의 현상으로 침입하는 오디오북이나 팟캐스트 같은 형태로 점차 바뀌고 있다. 파편화된 얕은 지식은 사람을 깊게 할 수 없다. 철든 사람이 귀해지는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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