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신외교 어떻게 해야 하나

韓 ‘백신 국제공조 뒷전 각자도생’ 비판했지만 美는 쿼드 회원국 인도 지원 결정
반도체 투자·쿼드플러스 참여 등 통해 백신 종주국이자 동맹국인 美 협력 이끌어내야


세계 각국은 코로나 백신 접종을 본격적으로 가속화하면서 빠르게 일상을 회복하고 있다. 반면에 한국은 백신 확보가 늦어진 데다 접종도 더디게 진행되면서 일상 회복은커녕 4차 대유행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백신 거지’라는 자조적 표현까지 등장했다.

문재인 정부가 백신 자국 우선주의를 비판하는 가운데 ‘11월 전 집단면역’을 자신하고 있지만, 백신의 안정적 수급이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미국은 백신 국제공조에서 한국은 뒤로 제쳐놨지만, 인도에는 집중 지원을 하겠다고 나섰다. 인도는 미국의 가장 강력한 동맹인 쿼드(Quad) 회원국이지만 한국은 아니기 때문이다.

◇백신 외교의 참패

올 들어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한 백신 도입 물량과 시기가 계속 바뀌면서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떨어졌다. 미국과 백신 스와프를 진지하게 검토 중이라던 정의용 외교장관의 말은 하루도 안 돼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미·일 정상회담에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가 화이자 백신을 대량 확보했다는 소식에 문 대통령은 안전성도 채 검증되지 않은 러시아산 백신 도입을 검토하라고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미국의 백신 금수조치 가능성에 관해 “깡패짓”이라는 부적절한 표현까지 사용했다. 홍남기 국무총리 대행은 지금까지 백신 도입 물량이 지연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면서 11월 집단면역 달성을 장담했다. 여권에서는 백신 제조사의 불공정 계약이나 백신 자국 우선주의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화이자 등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무리한 요구를 하고 갑질을 해댄다는 것이다.

범정부 백신 도입 태스크포스(TF) 발표에 의하면 정부는 9900만 명분의 백신을 확보했다. 이는 우리나라 인구의 약 2배 물량에 해당한다. 얼마나 확보했느냐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적기에 들여올 수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신속하게 접종할 수 있는지도 문제다. 확보된 물량이 언제쯤 우리 손에 들어올지에 대해선 정부 누구도 정확한 말을 해주지 않는다. 백신의 안정적 수급과 접종을 보장하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다른 나라들보다 한발 늦게 백신 확보 전쟁에 뛰어든 결과다. 현 상황은 결국 ‘백신 외교 참패’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외교의 기본이 없다

한국의 접종률이 저조한 가장 큰 이유는 백신을 조기에 확보하지 못한 정부의 실책에 있다. 한국이 백신 외교에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백신 종주국인 미국에 의지해야 한다. 전 세계가 백신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는 상황에서 전 세계 백신 공급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미국의 입장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미국도 지금 당장 해외로 백신을 보낼 만큼 충분한 백신을 갖고 있지는 않다면서 백신 수급의 우선순위로 캐나다·멕시코 같은 인접국, 쿼드 회원국인 일본·호주·인도 등을 거론했다. 한국은 우선 공급 대상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6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세계적 백신 부족과 관련해 “각국이 국제 공조를 뒷전으로 하고 각자도생에 나서고 있다”며 미국을 포함한 백신 자국 우선주의를 비판했다. 하지만 미국은 쿼드 동맹 인도에 대해서는 전폭적인 지원 계획을 세우고 있다. 미국의 대통령과 부통령, 국방장관까지 나서 대대적인 지원 성명도 발표했다. 인도가 중국을 견제하는 강력한 동맹인 쿼드 회원국이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이 백신의 안정적 수급을 이루려면 대미 백신 외교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5월 말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 간 담판에 기대를 거는 것은 그 때문이다. 외교의 기본은 ‘기브 앤드 테이크’, 즉 주고받기다. 지금 한국은 국제사회의 일방적 지원을 받아야 살 수 있는 가난한 나라가 아니다. 미국에서 백신을 조기에 나눠 받으려면 우리도 미국에 무엇을 줄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뭘 ‘주고받을’ 것인가

우선 한·미 간 반도체 협력과 백신 협력을 고려해볼 수 있다. 미·중 전략경쟁은 기술패권전쟁으로 확대되는 중이고 그 최전선에 있는 게 반도체 문제다. 반도체는 미래의 무기, 안보문제의 핵심이다. 백악관이 직접 글로벌 반도체 패권 장악을 위한 전략회의를 주재한 것은 그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삼성전자와 대만 TSMC 등 19개 글로벌 기업을 상대로 미국 내 투자를 독려했다. 반도체는 장기적인 투자를 필요로 한다. 투자는 기본적으로 기업이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부가 할 일은 삼성이 투자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런데 기업의 명운이 달린 중대한 투자 결정을 할 기업 총수는 지금 영어의 몸이다.

둘째는 미국이 대중 견제 차원에서 추구하는 동맹 네트워크 이슈에서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중시하는 가치·규범 외교와 동맹 네트워크 확대라는 두 축에 있어 한국의 신뢰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동안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미국이 중시하는 대부분의 이슈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한 채 분명한 입장 표명을 주저해왔다. 즉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이중 헤징’ 전략을 구사하면서 미국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한 것이다.

미국이 원하는 것은 외면하면서 우리가 원하는 것만 요구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쿼드 플러스’에 한국의 참여를 원하는 미국의 시그널이 있었지만, 정부는 공식적 요청이 없다는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 ‘아시아 차르’에 임명된 커트 캠벨은 ‘D10’ 같은 맞춤형 연대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중 경쟁을 기술민주주의 대 기술독재국가 사이의 기술패권경쟁으로 규정한 미국은 한국을 포함한 기술민주주의 12개국을 ‘T12’로 규합하려고 한다. 미·중 디커플링을 겨냥한 경제번영네트워크(EPN)도 추진하고 있다.

◇여전히 혼란스러운 文 메시지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의 대미 메시지는 여전히 종잡을 수가 없다. 문 대통령은 얼마 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바이든 대통령에게 2018년 미·북 싱가포르 합의 계승을 촉구했다. 중국이 주도한 보아오포럼에는 미국 동맹국 중 유일하게 화상으로 참석해 중국을 높이 평가하는 발언을 했다. 국민이 지금 원하는 것은 막연히 ‘11월 전 집단면역 달성’ 같은 두루뭉술한 언질이 아니라 백신을 언제 얼마나 들여와서 언제 백신을 맞을 수 있을지와 같은 구체적인 약속이다. 이를 위해 대미 백신 외교에 집중력을 발휘해야 할 때다.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 수석연구위원


■ 세줄 요약

백신 외교의 참패 : 정부가 ‘11월 전 집단면역’을 자신하고 있지만, 백신의 안정적 수급이 이뤄질지는 여전히 불투명. 다른 나라들보다 한발 늦게 백신 확보 전쟁에 뛰어든 결과임. 현재는 ‘백신 외교 참패’라고 할 만한 상황.

외교의 기본이 없다 : 文이 ‘백신 자국 우선주의’를 비판했지만, 미국은 인도를 전폭 지원하겠다는 계획. 인도가 강력한 쿼드 회원국이기 때문. 한국이 백신의 안정적 수급을 이루려면 미국과 ‘기브 앤드 테이크’를 해야 함.

뭘 ‘주고받을’ 것인가 : 우선 반도체와 백신의 협력적 교환을 고려할 수 있음. 또 미국의 대중 견제 동맹 네트워크에 참여해야 함.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이중 헤징’ 전략을 유지하면서 미국의 마음을 얻기는 어려울 것.


■ 용어 설명

‘D10’은 서방의 주요 7개국(G7)에 한국과 호주, 인도를 추가한 민주주의 10개국. 커트 캠벨이 대중(對中) 동맹을 다양화하기 위해 자유주의 국가 간 협의체 구성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제안.

‘쿼드’는 미국이 인도·일본·호주 등과 함께 하는 비공식 안보회의체이자 대중(對中) 동맹 네트워크. 미국은 여기에 한국·베트남·뉴질랜드 3개국을 더해 ‘쿼드 플러스’로 확대할 의향을 갖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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