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 풀밭, 종이에 먹과 채색, 35x39㎝, 2021.
김병종, 풀밭, 종이에 먹과 채색, 35x39㎝, 2021.


■ (73) 파리 아르페주(L’Arpege) 식당과 셰프 알랭 파사르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의 셰프
피 뚝뚝 떨어지는 오리·닭 보며
‘피흘림 없는 음식’ 생각 떠올려
자연철학 요리사로 대변신

아스파라거스·로즈메리·비트…
직접기른 채소로 황홀한 한 끼
요리사의 행복, 식탁에도 넘실
감사 기도와 같은 식사 되살려


인상적인 전시를 하나 보았다. ‘코로지엄과 식탁’. 화성의 엄 뮤지엄(관장 진희숙)이 기획한 이 철학적인 명제의 전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과 우리들의 식문화에 관한 것이었다. 코로지엄은 코로나와 뮤지엄의 합성어란다. 예컨대 ‘먹는 문제’와 관련된 지배와 종속 살생과 억압, 문명과 탈문명 그리고 종차별과 성차별에 이르기까지, 전시는 관객에게 질문들을, 그것도 불편한 질문들을 던지고 있었다. 그대들 인간들이야말로 생태계의 깡패들 아닌가요? 영상 속의 순한 눈을 가진 짐승들은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오늘의 미술이 신비의 영역을 벗어나면서 금융 거래의 수단으로 무섭게 달궈지는 세태 속에서 홀로 산속에 핀 한 떨기 꽃처럼 ‘코로지엄과 식탁’은 전시 본연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되돌아보게 해줬다.

이번엔 파리의 미슐랭 3스타 아르페주(L’Arpege) 식당이다. 막 죽임을 당해 피가 뚝뚝 떨어진 채 자기 앞에 도착한 닭과 오리를 내려다보던 한 셰프가 문득 도마 위의 칼을 멈춘다. 그는 눈을 창 쪽으로 돌렸다. 푸른 나무 아래로 검은 옷을 입은 한 무리의 유대교 사제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문득 사람들에게 피 흘림이 없는 요리를 내놓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한번 불쑥 떠오른 그 생각은 그러나 사무칠 만큼 절절했다. 요리 명인 알랭 파사르가 인기 있는 셰프에서 자연 철학의 요리사로 그 방향을 트는 순간이었다. 그는 고기 요리에 사용하던 불로 당근과 피망, 샐러리와 양파와 플랑베르를 만들기 시작했다. 가지와 부추의 자연채색 요리, 명상적 요리로 방향을 틀면서 동물을 죽여서 혀를 충족시키는 요리와 결별했다. 하지만 음식 평론가들은 그의 ‘개종’에 냉소했고 대경실색한 그의 오랜 팬들은 식당 아르페주가 곧 미슐랭의 별을 잃고 말 거라고 탄식했다(미슐랭의 별 셋은 그러나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생명을 죽여 혀를 만족시킨다는 무의식적 죄의식을 느끼지 않아서 좋았다. 더구나 생각처럼 그렇게 손님이 많이 줄지도 않았다. 오히려 무화과 잎과 채소 초밥, 훈제가지와 적양배추 같은 보랏빛 감성의 식탁을 차렸을 때 새롭게 열광하는 팬들도 생겨났다. 그는 이제 꽃과 식물들의 향기며 색채, 그리고 미묘한 소리로 식탁을 차리는 명인이 됐고 자연채색의 요리만으로 미슐랭 4에 도전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또 한 사람이 생각난다. 독일의 호스피스 병동 요리사인 루프레히트 슈미트다. 그는 잘나가던 최고급 레스토랑의 유명 요리사였다. 그러던 그에게 어느 날 감당할 수 없는 허탈감 같은 것이 다가왔다. 파사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내부로부터의 ‘역습’이었다. 자신의 요리 재능을 더 이상 부자들의 지갑을 여는 일에 쓰기보다는 좀 더 의미 있게 사용하고 싶다는 생각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는 형편없는 급료의 한 호스피스 병동 요리사로 자리를 옮긴다.

“가장 소중한 순간은 음식으로 기억된다”는 믿음과 함께 삶의 마지막에 도달한 사람들에게 저마다 간직한 가슴 먹먹해지는 기억의 음식을 차려 내 주기로 한 것이다. 먹고 싶은 음식의 신청을 받아서 그 사람 생애의 마지막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다(물론 꿈꾸듯 기억을 더듬어 일러준 식사를 정성스레 준비해가도 먹지는 못하고 눈으로만 보거나 그마저도 못한 채 숨을 거둔 경우도 있다). 이 일은 거의 성직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 일을 하면서 비로소 그는 삶의 허기가 채워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김병종 화가, 서울대 명예교수, 가천대 석좌교수
김병종 화가, 서울대 명예교수, 가천대 석좌교수
파리에 사는 미술 평론가 K. 그는 원래 요리 평론을 하고 싶었다는 사람이었고 미식가였다. 그가 어느 날 내게 베지테리안 오트 퀴진의 선구자라며 셰프 파사르와 그의 레스토랑을 소개했다. 파사르는 순전히 아스파라거스, 로즈메리, 비트, 애호박, 양파 같은 재료만으로 우아하고 아름다우며 황홀한 식탁을 차려 낸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탈리아식 만두 요리인 라비올리나 연어 스테이크 정도는 맛볼 수 있지만 주종이 그의 자작 농장으로부터 당일 날 새벽 따온 채소와 꽃 종류라고 했다. 내가 좋아하는 텃밭농 운동의 선구자인 웬들 베리 교수는 말했다. 식재료는 생산지와 소비지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좋은 것이라고. 파사르의 레스토랑 아르페주는 파리의 육군 박물관 근처 길거리 코너의 우아한 흰색 건물에 있었다. 무얼 먹었는지 자세한 기억은 없다. 그러나 첫 식사인 퓨레 형식의 아뮤즈 부시에 나온 비트, 무, 호박, 토란 같은 것들이 생각난다. 금방 만들어 나온 것 같은 식전 빵과 화이트 와인 그리고 파사르의 창조로 이름 높은 비트스시와 소르베, 정통 프랑스식 디저트인 프티 푸(Petit Pour)의 황홀한 그러나 금방 사라져 간 맛의 기억이 있을 뿐이다.

알랭 파사르
알랭 파사르
그 식당에서 가장 감동적인 것은 그러나 음식보다는 파사르 그 자체였다. 몇몇 식탁을 돌며 인사하던 그는 평론가 K를 보자 깜짝 반가워하며 빠른 속도로 자신의 볼을 그의 뺨에 양쪽으로 댔다가 뗐다. K가 나를 소개하자 얼른 가서 자신의 책을 가져왔다. 불어를 전혀 모른다고 하자 짧게 고민하던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놀랍게도 한국어로 된 자신의 책이 있다며 돌아선다. 그리고 잠시 후 난감한 표정으로 다시 와서는 없다고 했다. 그 표정이 백발의 소년 그대로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얼굴에 가득 흐르던 따뜻함과 행복감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행복한 느낌이 사람들과 식탁으로도 넘실거리는 것 같았다. 아, 여기까지가 요리구나, 싶었다. 그가 행복해하며 만든 요리의 분자는 손님들의 미각 속에서도 오롯이 느껴지는 것이다. 이제는 그의 얼굴에 피 흐르는 동물에 칼질할 때 드리웠을지 모를 무의식의 그림자 같은 것이 전혀 없어 보였다. 호스피스 병동의 요리사 슈미트는 말한다. ‘가장 소중한 시간은 음식으로 기억된다’고. 영원히 살 것처럼 달려왔다면 삶의 종장에서는 사랑하는 이와의 식탁을 위해 두 시간만 당신을 멈춰 달라고. 어쩌면 그것이 당신에게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두 시간일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화가, 서울대 명예교수, 가천대 석좌교수


■ 알랭 파사르

절묘한 플레이팅… ‘식탁의 자연예술가’


14세 때 셰프가 되기로 한 후, 그 결정에 일생 단 한 번도 흔들림이 없었다는 이 전설의 셰프는 파리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인 아르페주 식당의 경영주이자 수석 셰프다. 이미 40대에 프랑스 요리의 대가로 불렸던 그는 막 잡은 닭과 오리를 한데 꿰매어 새로운 요리로 내놓는 등 그 혁신성과 창의력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어느 날 생명을 죽이는 육식 요리에 환멸을 느낀 후 채식 위주의 자연주의 식탁을 선언하고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한다. 식탁은 사랑과 평화와 안식의 시공간이 돼야 하고 그러려면 더 이상 생명을 죽여 피 흘리는 메뉴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세 개의 자작 농장에서 직접 재배한 채소들로 새로운 상차림을 꾸렸다. 격한 찬반 논란 속에 이제는 그의 철학에 동조한 식당이 전 세계에 퍼져 있다. 특히 그는 미각의 반은 시각이라는 믿음으로 식기류에서부터 절묘하고 순발력 있는 색상 대비와 식재료 구성으로 식탁의 자연예술가, 식탁의 철학자, 식탁의 시인 등으로 불린다. 아르페주 식당은 파리의 육군 박물관 근처 길거리 코너의 우아한 흰색 건물에 있다.(84 Rue de Varenne, 75007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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