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 좌절한 2030 젊은층에
“투기하면 망한다” 경고 무의미
현실 변하면 대처법도 달라져야
문재인 정부의 인식전환 시급
부서간 책임 떠넘기기 그치고
블록체인 산업화로 유도해야
고삐 풀린 망아지가 있다. 속탈까지 났다. 좋은 약인 줄 알고 덜컥 먹고 남용했다가 독이 돼버렸다. 대수술이라도 해야 할 판인데 모든 조건이 여의치 않다. 의사는 응급조치로 진정제라도 놓은 뒤 부분절개를 해서라도 목숨부터 살려야 하는 상황이다. 아슬아슬하게 투자와 투기 사이를 오가던 가상화폐의 고삐가 풀렸다. 2008년 비트코인이 등장한 지 10여 년 동안 비슷한 사례가 더러 있었는데 최근 양상은 질적으로 다르다. 비트코인을 짜깁기한 알트코인(alternative coin·일명 잡코인) 1000여 개가 쏟아지면서 2030세대는 더 정신을 못 차린다. 하루 거래액수가 20조 원을 넘는다. 코스피와 코스닥을 합친 규모에 육박한다.
한국 상황이 유독 심각하다. 일자리와 내 집 마련의 꿈, 모든 희망 사다리가 여의치 않은 젊은층이 주식·부동산을 돌아 코인시장을 찾는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국회 답변에서 “잘못된 길로 가면 어른들이 얘기해줘야 한다”고 밝힌 진정성을 모르지 않더라도 이런 상황에선 젊은층 귀에 들릴 리 만무하다. 특정금융정보법에 따라 코인거래소의 옥석이 가려지는 9월까지 기다릴 시간도 없다. 투자든 투기든, 4개월 동안 악몽으로 귀결된 꿈을 부둥켜안고 한탄할 젊은이가 또 얼마나 많을지 모른다. 정부가 뭐가 됐든 당장 응급조치에 나서야 할 이유다.
비트코인이 엄밀히 말해 화폐가 아니라는 정부의 진단은 맞는 얘기다. 교환수단, 가치 척도, 가치 저장수단이라는 화폐의 3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이라는 암호화된 기술이 적용돼 극히 제한적으로 결제수단의 역할을 겸하는 투자 ‘상품’에 가깝다. 투기로 급속도로 변질되고 있는 현실이 문제라면 문제다. 이렇게 현실이 변했으면 대처법도 달라져야 한다. “코인은 투기성이 강하고 내재가치가 없는 가상자산이니 망하지 않으려면 투기를 멈추라”는 어른의 경고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의미다. 정부는 우선 가상화폐 생태계를 인정하고 소비자보호 정책 시행과 함께 투기성을 줄여나가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일정 수준의 제도권 편입이 처방전의 첫 출발일 수밖에 없다.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미국, 캐나다, 일본의 사례가 그렇다. 부작용은 차차 줄여나가면 된다. 젊은이들의 피눈물을 짜는 부정행위 처벌 조항도 법에 명확하게 해야 한다. 현재로는 시세조작, 다단계 사기, 불법 해외송금을 처벌할 근거조차 마땅치 않아 문제다.
정부 부처가 핑퐁 행태를 되풀이하거나 은행에만 책임을 떠넘기려 해서는 안 된다. 문재인 정부의 다음 할 일은 블록체인 산업 양성화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비트코인 탄생의 비밀이기도 한 블록체인의 경우 전 세계 정부가 달라진 세상, 최첨단 시대에 걸맞은 화폐개혁 차원에서라도 활발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국제결제은행이 2015년 보고서에서 분산형 장부기술을 활용한 중앙은행의 디지털화폐(CBDC) 발행을 방안으로 제시한 후 현실 적용을 위한 산업화 경쟁이 빨라졌다. 영국, 일본, 캐나다, 중국, 스웨덴, 호주, 에스토니아를 망라한다. 주요 증권거래소와 증권사들의 블록체인 주도권 경쟁도 이미 치열하다. 암호기술로 국제송금, 증권결제를 신속하고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다. 경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정부 거버넌스, 기업 경영활동, 선거 및 투표에도 블록체인이 활용될 영역이 넓다.
2030세대도 냉철해져야 한다. 경제학에서 투자 속성을 진단한 용어 중 ‘더 큰 바보 이론’(greater fool theory)이란 게 있다. 이미 실제 가치보다 높게 형성된 주식·부동산을 살지 말지 고민하다가 “나 같은 바보보다 더 심한 바보가 나타나 분명 내 것을 살 거야”라는 심리로 저지르는 비이성적 경제행위를 일컫는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제시한 개념이다. 가상화폐 양상이 여기에 딱 들어맞는다. 한 바보가 흥하면 누군가 다른 바보는 망하는 식의 돈 놓고 돈 먹기 게임이다. 장식장에 전시할 수도 없고, 컴퓨터에 기록된 무형의 기념품을 소장하고 싶다면 모를까 내재적 가치나 실용성도 없는 비트코인의 생존력이 얼마나 있을지는 의문이다. 주식시장처럼 정밀한 사전경고 시스템도 없어 버블이 터지면 그야말로 일순간에 망한다. 정부나 투자자나 모두 정신을 바짝 차릴 때다.
주요뉴스
이슈NOW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