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영면한 이건희 삼성 회장의 유지(遺旨)가 반년 만인 28일 유족들에 의해 공개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유족들은 감염병·소아암 극복을 위해 1조 원을 기부하고, 10조 원 넘는 가치로 추정된다는 문화재와 미술품을 국립기관 등에 기증하며, 세계적으로도 최대 규모라는 12조 원 이상의 상속세를 5년에 걸쳐 6회 분납하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유산의 60%가 사회에 환원된다고 한다. 세계 초일류 기업을 일군 거인다운 면모다.

그런데 고(故) 이 회장의 최대 업적이기도 하고, 국가 차원에서도 중차대한 반도체 산업이 중대 기로에 처했다. 생전에 이 회장은 “최대 관심은 반도체와 병원”이라고 했을 정도로 집중했고, 실제로 반도체는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7.3%에 이를 정도로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 상품이 됐다. 그런 반도체 산업이 미·중을 비롯, 유럽·일본·대만 등과 피 말리는 ‘초격차 경쟁’ 국면을 맞았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등 5개 경제단체장이 27일 이 부회장에 대한 사면 건의서를 청와대에 제출한 것은 재계의 일치된 위기감을 반영한다. 단체장들은 건의서에서 ‘치열해지는 반도체 산업 경쟁 속에서 경영을 진두지휘해야 할 총수의 부재로 과감한 투자와 결단이 늦어지면, 그동안 쌓아 올린 세계 1위 지위를 하루아침에 잃을 수 있다’고 우려했는데, 실상은 그보다 더 심각하다.

반도체 전쟁은 두 갈래로 진행되고 있다. 첨단 산업에서의 대중(對中) 우위를 확고히 다지기 위한 미국의 패권 선언,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전개될 산업 전반의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다. 이로 인해 전통 강대국들은 ‘탈아시아’를 공식화하는 중이다. 이런 위기감은 일반 국민도 감지할 수 있다. 광주·전남 8개 경제단체 역시 27일 이 부회장 사면을 건의했고, 그 전날에는 대한불교 조계종과 유림 대표조직인 성균관 등도 같은 취지를 공개했다. 이 부회장을 재수감한 지난 1월의 파기환송심을 두고 ‘코드 재판’ 논란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헌법이 부여한 특별사면 권한의 취지를 심사숙고하고, 사면 문제를 결단하기 바란다. 대통령 취임 선서에는 ‘국민의 복리 증진’도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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