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트 코로나, 아이들 마음부터 챙깁니다’ 저자 하지현
규칙 배우기·관계 맺기 등
공감력 키우는 기회 앗아가
아이들 꽃길만 걷게 하면
굳은살 박일 수 없게 돼
‘실패 = 탈락’ 공포 벗어나야
미래예측하는데 힘 쏟기보다
돌발사태 ‘대응능력’ 키울것
1년에 100권 이상 책을 읽는 ‘다독가’이자 ‘마음 주치의’인 하지현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가 감염병 시대 올바른 육아법을 고민한 ‘포스트 코로나, 아이들 마음부터 챙깁니다’(창비)를 출간했다. 하 교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아이들의 마음 발달에 ‘빈틈’이 생겼음을 감지하고 부모들에게 시급한 신호를 발신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불확실성으로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진 부모들이 불안을 달래며 자녀 마음을 돌보는 ‘코로나 블루 처방전’이다.
지난 28일 오후 서울 건국대 연구실에서 만난 하 교수는 “코로나19는 학교가 ‘교과목 이수’ 이상으로 많은 기능을 담당하고 있음을 깨닫는 계기가 됐다”고 운을 뗐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친구·선생님과 관계 맺는 법, 정해진 시간에 등교하고 밥 먹는 규칙을 배웁니다. 운동회, 축제, 수학 여행 등은 ‘추억의 이정표’ 역할을 하고요.” 학교의 이런 기능과 책임은 코로나19 이후 가정으로 넘어왔지만, 부모와 자녀는 함께 있는 시간이 늘며 ‘집안 갈등’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 하 교수의 진단이다. “지난해만 해도 등교 자체가 스트레스였던 아이들은 진료실에서 한결 환한 표정이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달라요. ‘엄마·동생이랑 싸우느니 차라리 친구들과 다투는 게 낫다’는 하소연을 쏟아냅니다.”
책은 시시콜콜한 것까지 챙기는 ‘헬리콥터 부모’의 ‘과잉 육아’ 경향도 한층 짙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코로나19 같은 위기 상황에서 낯선 시도와 실패를 최소화하려는 본능이 과잉보호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 교수는 “실패에 대한 내성이 낮고 두려움은 커진 상태가 아이들의 ‘기본값’이 될 것 같아 걱정”이라며 “실패는 불가피하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면 되는데 어느 순간부터 한 번 다치면 경쟁에서 영원히 탈락한다는 공포가 부모들을 지배하고 있다. 꽃길만 걸으면 굳은살이 박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아이를 내 인생의 자산이자 투자처로 여기며 ‘자식한테 모든 것을 바쳤다’고 믿는 이기적인 부모는 평생 갚지 못할 부채를 떠넘기는 거예요. 부모 상담을 할 때 최소한 51%는 ‘나’를 중심으로 살아야 애도 보이고 당신도 산다고 얘기합니다.”
하 교수는 ‘갈등’보다 큰 문제는 부모가 아이를 두려워해 다툼을 회피하는 모습이라고 꼬집었다. “안에서 좀 아파봐야 밖에서 덜 아픈 법입니다. 그런데 아이와 사이가 틀어지고 싶지 않아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식으로 넘기면 제대로 된 성인으로 성장하기 힘들죠. 학교가 그렇듯 가정에서도 ‘보이지 않는 선’을 그어줘야 해요. ‘친구 같은 부모’가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K-방역’으로 상징되는 순응 사회 속에서 점점 안정을 추구하는 부모들의 경향과 달리 코로나19가 ‘4차 산업혁명’을 앞당길 것이라는 점에도 주목했다. 하 교수는 “자식을 서울대에 보내려고 기를 쓰는 것은 갈수록 ‘가성비’가 떨어지는 일이 될 것”이라며 “성적 상위 1~2%의 학생은 예전처럼 ‘시험’을 통해 좋은 일자리를 얻겠지만 나머지 98~99%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능력 함양에 노력을 쏟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래엔 예술가·교사·의료인처럼 로봇이나 인공지능(AI)과 겨루지 않아도 되는 직업이 살아남을 거예요. 이들 직업의 공통점은 ‘휴먼 터치’를 바탕으로 창의성을 동반해야 숙련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휴먼 터치’ 기술 탑재에 필요한 능력으로는 ‘리터러시(문해력)’와 ‘에디팅’을 꼽았다. 그는 “차고 넘치는 정보 가운데 중요한 것을 골라 엮는 것이 ‘에디팅’이라면 문해력은 포만감이 있고 고난도의 정보를 흡수하는 힘”이라며 “‘수렴’이 아닌 ‘확산’의 사고를 유도하는 이런 능력을 갖추면 세상의 복합성을 포착하는 ‘스토리텔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 교수는 “어차피 내일을 예측하기 힘들다면 ‘계획 수립’에 너무 많은 힘을 쏟지 말자”는 제안도 내놓았다. “코로나19로 우리의 앞날이 ‘미세먼지 가득한 뿌연 하늘’처럼 변했습니다. 아이의 미래를 적당히 낙관하되 예측에 들이는 에너지를 비축해 예기치 않은 사태에 ‘대응’하는 능력을 키웠으면 합니다. 부모는 ‘통제’와 ‘방임’ 사이에서 자녀가 스스로 딛고 설 수 있는 ‘발판’이 되면 충분합니다.”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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