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지키기 캠페인’ 시작
1994년 그 무렵엔 버려진 아이가 유독 많았다. 그해 1월 문화일보는 ‘생명 지키기 캠페인’을 벌이기로 하고 버려진 아기를 추적했다. 기자가 맡은 아기는 윤초. 태어난 지 하루 만에 홀트아동복지회에 맡겨져 위탁모에게서 키워지다 미국인 가정으로 입양된 아기였다. 문화일보는 지면을 통해 독자에게 ‘아이의 장래를 지켜보겠다’고 약속했다.
같은 해 4월 기자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윤초의 가정을 방문했다. 당시 한국 사회에는 해외 입양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이 있었다. 낳은 부모로부터 한 번, 태어난 나라로부터 또 한 번, 두 번 버림받은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입양 가정들을 접한 뒤 생각이 바뀌었다. 이들의 사랑은 종교보다 깊었다.
윤초의 부모 피셔 부부는 당시 성장 지체 증상을 보이던 ‘딸’을 치료하기 위해 매일 병원을 오갔다. “어떻게 자신이 낳지도 않은 다른 피부색의 아이를 사랑할 수 있냐고요. 인류는 하나입니다. 모든 아이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어요.” 시애틀에서 만난 또 다른 부부는 중증 장애를 가진 아이를 평생 휠체어 사랑으로 키웠다. 샌프란시스코와 포틀랜드 등지에서 만났던 입양 가정의 사연을 취재하면서 기자는 그들의 사랑에 울고 우리의 현실에 비감했다.
한국 아이들의 미국 입양은 홀트 부부로부터 시작됐다. 1955년 6·25전쟁의 참상을 접하고 전쟁고아 8명을 받아들인 게 시작이었다. 그 후 지금까지 전 세계 20만 명이 넘는 아이가 홀트국제아동복지회를 통해 미국에 보금자리를 갖게 됐다. 기자는 1994년 오리건주 유진에 거주하던 버서 홀트 여사와 만났을 때의 대화를 잊을 수 없다. “어른의 의무는 가정이 필요한 아이에게 가정을 갖게 해주는 겁니다.” 2000년에 세상을 떠난 홀트 여사는 남편 해리 홀트와 함께 경기 고양시 일산에 묻혔다.
기자는 독자와의 오래된 약속을 지키려 미국에 건너간 후배 기자의 연결로 얼마 전 윤초와 통화했다. 첫 취재 27년 만의 일이다. 미국인 ‘사라 피셔’로 성장한 윤초는 “부모님을 만난 건 신의 은총이었다”고 말했다. 전화선 속의 윤초는 활기가 넘쳤다. 피셔 부부는 오래전 기자와 만났던 순간을 또렷이 기억했다. 제럴드 피셔 씨는 “우리 가족은 당신이 취재 왔을 때의 놀라운 경험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입양은 성사(聖事)다. 세상은 조건 없이 사랑을 베푸는 사람들로 살 만해진다. 기자는 생애 최고의 기사로 주저 없이 ‘윤초 취재기’를 꼽는다. 처음 아기 윤초를 만난 것은 ‘슬픔’이었지만, 미국의 새 가정을 방문한 것은 ‘감동’이었고, 문화일보가 멋진 숙녀로 성장한 그녀와 재회한 것은 ‘축복’이었다.
허민 전임기자 minsk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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