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DOC ‘런 투 유’

공포영화, 재난영화를 좋아했다. 오멘, 엑소시스트, 13일의 금요일, 포세이돈 어드벤처… 돌아보니 그건 ‘강 건너 불구경’이었다. 내가 저런 상황에 있지 않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적어도 내 앞엔 강이 있다. 뭐 이런 심정이 내면에 깔려 있었던 거다.

영화 보러 가면서 극장 구경 간다던 시절이 있었다. 홍상수 작품 중에도 구경남이 등장한다. 심사위원으로 초청된 감독 이름이 ‘구경하는 남자’(?)다. 남의 잔치에 배 놓아라 감 놓아라 하고 싶을 때마다 이 영화 제목이 얼핏 떠오른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Like You Know It All). 영화엔 이런 대사가 이어서 나온다. “딱 아는 만큼만 안다고 해요.”

우리는 상대에 대해 얼마나 알고 말할까. 휘트니 휴스턴이 부른 ‘런 투 유’(Run To You)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그대가 나를 볼 때(I know that when you look at me) 보이는 게 다는 아니죠(There’s so much that you just don’t see).’ 같은 제목의 DJ DOC 노래도 있다. ‘아무리 우리 멀리 있어도/ 그 무엇이 날 막고 있어도/ 갈 수 있어 너만 원한다면.’ 이렇게 다정하던 친구들의 우정이 요즘 심상치 않다. 정말 그들이 친구였던 건 사실일까. 우정을 ‘우리가 정말’의 약자로 쓰기도 한다.

주철환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주철환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세대를 초월해 폭넓게 사랑받은 곡이 ‘DOC와 춤을’이다. ‘권위주의는 숨 막혀’란 메시지를 이처럼 선명하게 표현한 노래는 흔치 않다.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을 먹나요/ 잘못해도 서툴러도 밥 잘 먹어요.’ ‘청바지 입고서 회사에 가도/ 깔끔하기만 하면 괜찮을 텐데.’ 고정관념을 깨자는 얘기다. 시선의 노예가 되지 말라는 얘기다. 창의보다 예의를 중시하는 교실에선 레퍼토리가 반복된다. ‘너 사회에 불만 있냐’ ‘꿈도 꾸지 마’ ‘말도 꺼내지 마’ 이런 분위기에서 그들은 용감한 3총사였다.

브라이언 아담스의 ‘올 포 러브’(All for Love)는 뮤지컬 ‘3총사’의 메인 테마곡이다. ‘하나를 위해/ 사랑을 위해/ 모두 하나가 되자(Let’s make it All for one and all for love)’. 악동 3총사도 시작은 그랬다. 초기에 DOC는 Dreams of Children의 약자였다. 아이들의 꿈은 왜 깨졌을까. 혹시 이런 것 때문은 아니었을까. ‘나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막 대하고’(DJ DOC ‘나 이런 사람이야’ 중).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을 수 있다면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질 수도 있다. ‘돈 싫어/ 명예 싫어/ 따분한 음악 우린 정말 싫어’(‘머피의 법칙’ 중). 그 다짐이 깨졌다. 이하늘은 김창열을 겨냥하며 ‘지금 준비하고 있는 게 많다’고 경고했다. ‘세상 모든 게 다 내 뜻과 어긋나 힘들게 날 하여도/ 내가 꿈꿔온 내 사랑은 널 위해 내 뜻대로 이루고 말 테야’(‘머피의 법칙’ 중). 그 시절의 약속은 이제 강 건너 사라진 걸까.

흔들린 우정을 보는 내 마음이 편치 않다. 강 건너 불구경이 아니기 때문이다. 연구실로 내게 결혼식 주례를 부탁하러 와서 김창열이 말한 게 기억난다. “학교를 제대로 못 다녀서 은사님이 안 계셔요.” 인생학교에서는 발표력만큼 자제력이 필요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게 아니라 말이 많아서 탈이 많다. 친구를 얻는 말이 있고 친구를 잃는 말도 있다. ‘그래서 친구’ 이것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 이게 진짜 친구 아닐까.

‘내 안의 상처가 안 보이나요’(Can’t you see the hurt in me)(휘트니 휴스턴 ‘런 투 유’ 중). 다시 들으니 섬뜩하다. ‘선물을 준 숫자만큼 날 사랑할까/ 아닐 거야’(‘슈퍼맨의 비애’ 중).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까. 희망은 있다. 13일의 금요일이 지나가면 14일의 토요일이 찾아온다.

작가·프로듀서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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