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포도뮤지엄에서 열린 ‘너와 내가 만든 세상’ 전에서 관객들이 권용주, 최수진, 장샤오강 작가의 작품이 함께 자리한 전시실을 둘러보고 있다.
제주 포도뮤지엄에서 열린 ‘너와 내가 만든 세상’ 전에서 관객들이 권용주, 최수진, 장샤오강 작가의 작품이 함께 자리한 전시실을 둘러보고 있다.

■제주서 만난 티앤씨재단 ‘너와 내가 만든 세상’展

서울 전시 이어 개관전 초대
한·중·일 작가 독특한 조형미

‘매달린 사람들’‘기억의 서랍’
피해자가 가해자된 모습 풍자
저장되는 혐오의 역사 보여줘

“타인 고통 동화되는 경험으로
화합의 메시지 나누는 기회”


혐오 없는 세상을 꿈꾼다는 메시지가 뚜렷한 전시였다. 메시지가 넘치면 거기에 짓눌릴 수밖에 없는데, 작품마다 독특한 조형미와 흥미로운 스토리로 보는 이를 흡인했다. 전시장 입구에서 영국 밴드 핑크 플로이드의 노래 ‘우리와 그들(Us and Them)’이 흘러나온다. 노래 여운을 음미하며 전시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가면, 우리를 유혹하는 가짜 뉴스와 왜곡된 정보가 편견을 부추겨 혐오를 증폭하는 과정을 만난다. 혐오가 인류에게 끼쳐온 고통을 바라보게 되고, 그런 역사 속에서도 포용과 화합의 길을 택한 이들에게서 위로를 받는다.

이처럼 극적인 구성을 지닌 전시를 경험한 것은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에서 문을 연 ‘포도뮤지엄’에서였다. ‘너와 내가 만든 세상’이라는 제목으로 지난달 24일 시작한 전시는 내년 3월까지 진행된다. 공익사업을 운영하는 티앤씨재단(T&C Foundation)에서 기획한 ‘아포브(APoV : Another Point of View)’ 전시의 하나다. 아포브는 ‘다른 생각’에 대한 포용과 이해를 뜻한다.

‘너와 내가 만든 세상’은 지난해 서울 전시로 호평을 받고 이번에 제주 포도뮤지엄 개관전으로 초대받았다. 서울 전에 참여했던 한국의 강애란, 권용주, 성립, 이용백, 최수진 작가와 일본의 쿠와쿠보 료타 작가가 모두 출품했고, 중국의 장샤오강(Zhang Xiaogang)과 한국의 진기종 작가가 새로 합류했다. 서울 전을 봤던 관객들은 “각 작가의 부스가 훨씬 넓어졌고, 작품 내용도 풍성해져서 관람이 더 즐겁다”는 반응을 보였다.

독일 작가 케테 콜비츠의 조각 작품 ‘여인과 두 아이’.
독일 작가 케테 콜비츠의 조각 작품 ‘여인과 두 아이’.

작가들의 작품 외에도 티앤씨재단에서 직접 기획한 5개의 테마 공간이 눈길을 끌었다. 디지털 인터랙티브 등의 방식으로 입체 경험을 선사하는 부스였는데, 실감이 뛰어나 한참 머무르게 했다.

서울 전에서처럼 관객들은 료타 작가의 ‘로스트 # 13’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다. 기차길 주변에 배치된 빨래집게 등의 생활 소품이 기차가 지나가면서 비추는 불빛으로 인해 엉뚱한 물체로 나타나는 형상이 기이한 매력으로 느껴진 까닭이었다. 신기함에 사로잡혀 있다가 실재가 왜곡되는 현실에 대한 성찰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최수진, 권용주, 장샤오강 등 세 작가의 작품이 함께 자리한 전시실도 강렬한 인상을 줬다. 각각의 이야기를 전하면서도 세 작품이 조응함으로써 메시지의 울림이 더 절실해졌다. 권 작가의 ‘계단을 오르는 사람’ ‘매달린 사람들’은 20세기 초반의 독일 작가 존 하트필드의 포스터 작업을 차용해 신체 일부가 연기를 내뿜는 모습을 표현했다. 혐오에 선동을 당한 피해자들이 또한 혐오를 발화하는 가해자가 돼 버린 모습을 풍자한 것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권 작가는 “오늘날의 혐오가 100년 전과 다름없다는 것에 착안해 작업했다”고 설명했다.

회화 작업으로 알려진 최 작가는 “이번에 처음 조각을 만들어봤다”며 “혐오 대상을 납작하게 만들었는데, 튤립과 버섯 등의 식물과 사람 모습을 함께 섞었다”고 했다. 최 작가의 ‘벌레 먹은 숲’은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숲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혐오와 편견이라는 벌레에 갉아먹힌 상처를 드러내고 있다. 장샤오강의 ‘기억의 서랍’은 혐오의 역사가 사라지지 않고 저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에 새로 참여한 진기종 작가의 ‘우리와 그들’은 가톨릭과 불교, 이슬람의 교리가 다르지만 기도하는 마음은 같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기도하는 손에 들린 세 종교의 묵주, 염주들이 다른 듯 같은 모습이어서 미소 짓게 만든다.

‘너와 내가 만든 세상’ 전은 관객이 이해하기 쉽도록 각 설치작품 옆 벽면에 개요를 적어놨다. 자세한 설명은 오디오 가이드를 통해 들을 수 있다.

김희영 티앤씨재단 대표는 이번 전시를 기획한 동기와 관련, “몇 년 전 다보스에서 홍콩의 비영리 재단 크로스 로드(www.crossroads.org.hk)의 난민 체험프로그램에 참여한 후, 타인의 고통에 완벽하게 동화돼 보는 경험이 공감 교육의 핵심임을 깨닫고 구상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많은 관람객과 함께 혐오와 차별의 해악성을 돌아보고 공감과 화합의 메시지를 나누길 희망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한편, 이번 전시와 더불어 포도뮤지엄 2층에선 ‘케테 콜비츠 - 아가, 봄이 왔다’가 펼쳐진다. 콜비츠(1867~1945)는 독일 현대 미술사를 대표하는 작가로, 이번 전시는 ‘오랜 독백’ ‘세상에게 건네는 위로’ ‘총칼의 파국’ ‘죽음과의 조우’ ‘억압 속의 외침’ 등 5개 주제로 펼쳐진다. 판화 원작 32점과 1개의 청동 조각 작품을 소개한다. 작가의 작품 세계와 생애를 다룬 영상 3편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포도뮤지엄 개관 기념으로 이달 말까지는 무료로 공개한다. 뮤지엄 홈페이지(www.podomuseum.com)에서 사전 예약하면 된다.

제주=글·사진 장재선 선임 기자 jeijei@munhwa.com
장재선

기사 추천

  • 추천해요 0
  • 좋아요 0
  • 감동이에요 0
  • 화나요 0
  • 슬퍼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