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 대한항공  로베트로 산틸리 전 감독
프로배구 대한항공 로베트로 산틸리 전 감독

축구대표팀  파울루 벤투 감독
축구대표팀 파울루 벤투 감독

■ 한국스포츠 누비는 외국인 사령탑

- 서열·학연 아닌 능력 중시… 공정·평등 용병술

국내 4대스포츠 전·현직 35명
파벌 용납 않고 자율경쟁 유도
성과 못 내면 비난 빗발 ‘단명’

윌리엄스, 배팅볼 투수도 자처
수베로, 번역기 돌려 한글 소통
프로야구 사상 첫 맞대결 화제


국내 4대 프로스포츠를 거쳤거나, 현재 지휘봉을 휘두르는 외국인 감독은 총 35명(감독대행 포함)이다. 축구가 27명으로 가장 많고 야구는 4명, 남자농구 2명, 그리고 남녀배구가 1명씩이다. 시즌이 진행 중인 프로야구엔 2명, 프로축구엔 1명의 외국인 감독이 팀을 이끌고 있다. 국가대표팀에도 남자축구의 파울루 벤투(포르투갈), 여자축구의 콜린 벨(영국), 여자배구의 스테파노 라바리니(이탈리아) 등 외국인 감독이 여럿 포진하고 있다.

프로와 대표팀을 통틀어 가장 성공한 외국인 사령탑은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빚은 거스 히딩크(네덜란드) 감독이다. 국내로 범위를 좁히면 우승이란 목표를 달성한 외국인 감독은 여럿 있다. 가장 최근엔 지난달 17일 대한항공을 남자프로배구 정상으로 견인한 로베트로 산틸리(이탈리아) 감독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산틸리 감독은 남자프로배구 사상 최초의, 그리고 첫 우승을 차지한 외국인 사령탑이다. 지난해엔 조제 모라이스(포르투갈) 감독이 전북 현대에 프로축구 우승컵을 안겼다. 프로야구에선 2018년 트레이 힐만(미국) 감독이 SK를 정상으로 안내했다.

거액을 투입하면서까지 외국인 사령탑을 ‘고용’하는 이유는 물론 있다. 외국인 감독은 우선 한국스포츠, 나아가 한국사회의 고질로 꼽히는 학연, 지연, 서열에서 자유롭다. 선수, 스타 등 네임밸류, 지명도에 휘둘리지 않는다. 능력 본위의 용병술을 활용, 선수단이라는 조직 전체의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고 특히 팀 내 파벌을 용납하지 않는다. 히딩크 감독이 대표적인 예. 히딩크 감독은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무명이었던 박지성, 대학생이었던 차두리, 백업 골키퍼 이운재를 발굴하고 기회를 제공해 4강 진출의 밑거름으로 삼았다. 히딩크 감독의 화려한 용병술이 월드컵 4강이란 값진 열매를 맺은 뒤 외국인 사령탑 선임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또한 외국인 감독은 종목별로 선진 기술과 전술전략을 갖췄고, 체계적인 선수단 관리 및 운영 능력을 지녔다. 힐만 감독이 좋은 예로 국내 프로야구에 데이터 붐을 조성했다. 힐만 감독은 상대 팀 타자의 스타일에 따라 수비 시프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반대로 상대 팀 투수에 따라 타선을 유연하게 바꿨다. SK 투수의 투구 이닝, 투구 수를 철저하게 제한해 부상을 방지하는 동시에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도록 배려했다.

프로야구 한화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
프로야구 한화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

프로야구 KIA 매트 윌리엄스 감독
프로야구 KIA 매트 윌리엄스 감독

‘탈권위’ 역시 외국인 감독의 공통점이다. 한국스포츠에서 감독은 스승, 아버지에 비유된다. 선수생명을 연장하고 중단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감독이 발휘한다. 그렇다 보니 권위적인 존재로 여겨진다. 감독은 선수와도 수직 관계이며, 팀의 정점에 자리한다. 감독의 말을 거역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감독의 의사와 다른 의견을 표현하는 것조차 금기시된다. 선수가 감독과 ‘말을 섞는’ 자체가 건방진 행동으로 비친다.

하지만 외국인 사령탑은 다르다. 사고방식에서 차이가 난다. 외국인 감독은 선수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면서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외국인 사령탑과 선수는 수직이 아닌 수평적 관계다. 외국인 감독은 그래서 먼저 다가간다. 모라이스 감독은 이동국 등 전북의 고참 선수들과 함께 식사하고, 바비큐 파티를 즐겼다. 훈련에도 적극 참여한다. 프로야구 KIA의 매트 윌리엄스(미국) 감독은 배팅볼 투수를 자처하고, 내야 수비 훈련에선 손수 시범을 보인다. 훈련 장비도 직접 나른다. KIA의 허권 홍보팀장은 “윌리엄스 감독은 선수들에게 먼저 안부를 묻고, 프런트를 만나면 항상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면서 먼저 고개를 숙인다”고 설명했다.

프로야구 한화의 카를로스 수베로(베네수엘라) 감독이 지난해 11월 말 한화와 계약한 뒤 가장 먼저 한 건 ‘카카오톡’ 다운로드. 선수단과 소통하기 위해서다. 수베로 감독은 프런트에게 받은 선수단의 전화번호를 휴대전화에 입력한 뒤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선수들에게 인사를 보냈다. 감독이 먼저 선수에게 휴대전화로 메시지를 보낸다는 건 ‘문화적인 충격’에 비유할 수 있다. 게다가 한국어로. 수베로 감독은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 한글 톡을 보냈지만, 그가 보낸 인사말은 선수단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내야수 정은원은 “번역기를 통했기에 표현이 서툴렀지만, 수베로 감독의 톡은 그래서 더욱 가슴에 와 닿았다”며 “감독께서 먼저 말을 걸고, 또 잘 해보자고 의욕을 북돋는 데서 진심을 느꼈다”고 말했다.

윌리엄스, 수베로 감독의 ‘평등 리더십’은 선수단의 자율을 보장하면서 동기를 유발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다른 외국인 사령탑도 마찬가지. 훈련, 경기 외엔 간섭을 최소화하고 이로 인해 ‘위계질서’에 녹아든 선수단에 긍정적이고 신선한 충격을 안긴다.

그런데 외국인 감독은 ‘단명’하는 편이다. 히딩크 감독이 한·일 월드컵 4강 진출을 이루자 다음 월드컵까지 재계약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히딩크 감독은 2년 임기를 채우고 떠났다. 힐만, 모라이스, 산틸리 감독도 국내리그 정상에 오른 뒤 돌아갔다. 가족을 그리는 향수병, 구단 또는 협회와의 마찰, 성적 부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한국스포츠에 따라붙는 성적 지상주의라는 수식어는 외국인 사령탑에게도 엄청난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정점에 있을 때 박수받으며 떠나는 걸 선택하는 이유다.

반대로 정상에 오르지 못하거나, 기대했던 성과를 거두지 못했을 경우엔 화살이 빗발친다. 외국인 감독이 가장 많은 프로축구의 경우, 역대 외국인 사령탑의 평균 재임 기간은 약 1년 3개월. 사실상 한 시즌인 셈이다.

특히 축구국가대표 외국인 감독은 바늘방석. 히딩크 감독을 제외하면 모두 실패로 분류된다. 아나톨리 비쇼베츠(러시아) 감독은 1994년 7월 대표팀의 첫 외국인 사령탑으로 부임했지만, 1996 애틀랜타올림픽에서 1승 1무 1패로 8강 진출이 무산되자 현지에서 해고됐다. 움베르투 코엘류(포르투갈) 감독은 2003년 2월∼2004년 4월,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은 2004년 6월∼2005년 8월, 딕 아드보카트 감독은 2005년 10월∼2006년 6월, 핌 베어벡(이상 네덜란드) 감독은 2006년 7월∼2007년 8월, 울리 슈틸리케(독일) 감독은 2014년 9월∼2016년 6월까지 대표팀과 함께했고 중도에 경질됐다. 벤투 현 대표팀 감독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정세영 기자 niners@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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