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김수현에게

수현아, 네가 벌써 대학생이 됐다는 게 엄마는 가끔 실감이 안 나. 난산으로 너를 낳는 바람에 제대로 안거나 업어주지도 못하고 네 옆에 누워 바라보기만 했는데 기운 없는 엄마를 보고 방긋방긋 웃어주던 아들. 그렇게 너는 아기 때부터 엄마를 행복하게 해준 아들이었어. 좀 더 커서는 일복 많은 엄마가 힘들어할 때면 꼭 안아주고 뽀뽀해주던 아들. 자식 자랑하면 팔불출이라지만 엄마는 너와 네 동생 시현이만 생각하면 절로 힘이 나서 일하곤 했단다. 네가 어렸을 때 엄마가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이 너희 형제를 낳은 거라고 했던 거 기억하지? 그건 지금도 변함이 없어.

네가 초등학생 때 담임 선생님이 엄마에게 전해준 이야기가 있어. 글짓기 수업시간 중 제목이 ‘엄마는 나를 잘 알아요’였는데 네가 글짓기를 안 하고 있었대. 선생님이 “수현아, 왜 글 안 써?” 했더니 “우리 엄마는 나를 잘 몰라요”라고 대답했대. 엄마는 선생님이 전해주기 전엔 그렇게 아들 맘도 몰라주는 부족한 엄마였어. 어려서부터 동생 잘 챙기는 형으로, 의젓한 아들로만 살게 해서 미안해, 수현아. 역사탐방을 갈 때나 친구들이랑 놀러 갈 때도 동생을 데리고 다녀야 했는데도 넌 한 번도 싫다고 말하지 않았지. 하지만 엄마도 네 맘을 전혀 모르진 않았어. 너도 어렸을 땐데 동생 예뻐해 주고 커서도 잘 지내줘서 고마워.

네가 중학생이 되던 해였던가, 엄마랑 함께 집 근처 안산 둘레길을 산책하면서 네가 물었지. “엄마는 어렸을 때 꿈이 뭐였어요?” 어린 시절 일하느라 바쁜 외할머니의 따뜻한 품이 항상 그리웠던 엄마는 “현모양처”라고 답했지. 그러자 네가 한 말, “엄마는 꿈을 이뤘네요.” 외할머니 못지않게 일하느라 바빴던 엄마는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지. 네가 “우리(형제)가 행복하잖아요”라고 답했을 때 가슴이 먹먹해졌지. 그러곤 따스한 기분이 뒤이어 들었어. 그렇게 수현이 너는 어렸을 때부터 참 품이 넉넉한 아이였단다. 그런 아들을 생각하면 반짝반짝 빛나는 햇살이 떠올라. 어려서부터 바쁜 엄마가 힘들까 봐 스스로 알아서 동생을 잘 챙겼던 아들. 지금 생각해보니 엄마는 누구보다도 아들한테 사랑받은 엄마였던 거 같아. 엄마가 너를 사랑한 것 이상으로 네가 엄마를 행복하게 했고, 엄마는 그 힘으로 좋은 삶을 살 수 있었던 거 같아. 엄마가 성숙한 어른이 될 수 있었던 건 모두 아들 덕분이야.

고3 때 갑자기 진로를 바꾸면서 수능 준비하느라 긴장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네가 수시 합격하고 다른 도시 대학에서 기숙사 생활을 한 지 벌써 두 달이 지났구나.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신체검사 받으러 간다고 담담히 전화하는 네 목소리에 울컥하더구나. 네가 성인이 돼 가는 과정이 왜 이리 조용하기만 한지 엄마는 마음이 아파. 수현이 네가 그랬지, ‘우린 망한 20대’라고. 하지만 아들아, 꿈을 펼치기 쉽지 않은 환경이지만 네 꿈을 잊지 말고 그 길을 찾아가기를 엄마는 간절히 기도하고 있어. 내일이면 스무 살 생일을 맞는 네가 이제는 누구의 아들, 누구의 형으로서가 아니라 온전히 너 자신의 삶에 집중하기를, 그래서 네 20대가 끊임없이 시도하고 넘어지고 다시 시도하는 역동적인 시간이 되길 바란다.

엄마 강곤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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