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실장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유족들에게 약 12조 원 규모의 상속세가 부과될 것으로 전망된다. 워낙 액수가 큰 탓에 5년간 나눠서 내고, 그마저도 현금이 부족해 상당 부분은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낼 예정이라고 한다. 참고로 12조 원이면 매월 1억 원씩 소비로 지출하더라도 1만 년이 걸리는 규모의 금액이다. 한평생 기업을 일군 경영자가 사망한 후, 유족들이 상속세를 낼 재원을 마련하지 못해 회사지분을 매각하고 경영권을 포기하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미국, 영국, 독일 등 주요 선진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30∼40% 수준이다. 반면, 한국은 최고세율이 6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OECD 37개국 중 상속세 비과세 국가는 15개국, 상속세는 있으나 직계비속에 대한 상속세를 비과세하는 나라가 4개국이다. 그 외 상속세 부과 18개국의 평균세율도 27.1% 수준이다. 세계 주요국들은 상속세를 폐지하거나 세율을 낮춰 기업의 부담을 줄여주는 추세다. 상속세가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안정적 고용유지에 걸림돌이 된다는 인식에서다. 캐나다와 호주는 이미 1970년대, 멕시코, 스웨덴, 오스트리아, 체코 등은 2000년대 이후 차례로 상속세를 폐지했다.

일반 상속세의 최고세율은 50%지만, 기업을 상속하는 경우에는 기본세율에 할증과세가 붙어 최고 60% 세율이 적용된다. 반면에 다른 나라들은 오히려 가업승계에 대해 각종 공제감면 혜택을 주면서 상속세 부담을 낮춰준다. 상속 과정에서 기업은 상속세 마련을 위한 보유 지분 매각과 그로 인한 경영권 위협을 걱정하는 대신, 기업경영과 고용유지에 전념하라는 취지다.

우리나라도 가업승계 시 상속세 일부를 공제해주는 가업상속공제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적용 대상 기업의 범위가 협소하고 요건이 까다로워, 매년 제도를 활용하는 기업이 소수에 불과하다. 정부도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지속적으로 가업승계에 대한 세제 지원을 확대하고 있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60% 세율이면 3대만 가도 경영권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된다. 이러다 보니, 높은 상속세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기업을 매각하거나 해외 이전을 고려하는 기업인들도 나오고 있다. 상속세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일정 기간에 걸쳐 상속세를 분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그 기간이 짧아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편이다.

열심히 노력해서 일군 기업이 후대에 더욱 성장하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기업인의 바람일 것이다. 또한 그런 기업이 보다 많은 세금을 납부하고 보다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국가경제에 기여하는 것은 모두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상속세제의 개선이 시급한 이유다. 가업승계에 대한 세제지원 요건을 완화하고 적용기업의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 최대 주주에 대한 할증과세는 다른 나라에는 거의 없는 제도이므로 폐지할 필요가 있고, 단기간에 상속세 납부 재원 마련이 어려운 경우가 많으므로 상속세를 분납할 수 있는 기간도 확대해야 한다. 상속세율을 낮추는 방안과 함께 장기적으로 자산 상속의 경우 상속 시점이 아니라 자산을 처분해 이익을 실현한 시점에 과세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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