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한 한림대 교수·정치학

美 클린턴 퇴임 때 지지율 66%
그런데도 ‘ABC’ 수모 못 피해
文 임기 말 ABM 현상 심각할 것

대못박기로 퇴임 후 보장 못 해
상징 조작이나 개헌 정략 無用
국민 전체 위한 국정이 안전판


‘클린턴과는 반대로!’ 즉, ABC(Anything But Clinton)는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바로 전임자인 빌 클린턴 행정부와는 매우 다른 정책 기조를 취한다고 해서 나온 표현이다. 이후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각각 ABB, ABO, ABT 등의 유사한 표현이 등장했다.

실제로는 역대 미국 행정부의 정책이 직전 행정부의 정책과 늘 다른 게 아니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정책 중에는 클린턴 행정부 정책을 그대로 답습한 게 적지 않다. 또, 새 행정부에서 폐기된 전임 행정부 정책도 직전 행정부가 새로 도입한 게 아니었다. 예컨대,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폐기한 민주당 클린턴 행정부의 중동 정책은 같은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 행정부나 조지 H W 부시 행정부가 이전에 이미 시행했던 정책이다. 결국, ABC와 같은 정책 기조의 명칭은 전임 행정부에 모멸감을 주려는 수사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퇴임 직후 ABC를 공공연하게 당한 클린턴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직무수행 지지도는 갤럽 조사 기준으로 66%였다. 이에 비해,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의 임기 말 직무수행 지지도는 한국갤럽의 분기별 조사 기준으로 많아야 24%, 적게는 6%에 불과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경우 새 정부는 전임 정부의 정책을 바꾸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 후보가 아닌, 여당 후보가 당선됐을 때에도 신(新)여권 주도 세력은 구(舊)여권의 흔적을 지우고 뒤집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나라의 역대 대통령들은 임기 말 또는 퇴임 직후의 나쁜 일들이 모두 자신의 탓으로 매도되거나 조롱받기도 했다. 물론 ‘게이트’ 등으로 명명된 나쁜 일 중 일부는 대통령 탓도 있긴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만료가 임박하거나 퇴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에도 일정 수준의 ABM(Anything But Moon) 즉, 반문(反文) 현상은 불가피할 것이다. 사실, ABM은 4년 전 대선 때 이미 등장했다. ‘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이라는 뜻의 ‘어대문’에 대응해서 나온 슬로건이 바로 ABM(문재인 후보 빼고 아무나)이었다.

전임 정부의 성과가 모조리 폐기되는 것은 전임 대통령뿐만 아니라, 존속 단위로서의 국가 전체에도 불행한 일이다. 이런 불행을 막으려면 현 정부가 대못을 박아 차기 정부가 바꾸지 못하도록 만드는 방안으로는 안 된다. 그 대신에, 그 정책의 유지가 차기 정부에도 좋아 차기 정부 스스로 직전 정부의 정책을 계승하도록 만드는 방안이 필요하다. 아무리 세게 박은 대못도 새 정부에서는 그렇게 어렵지 않게 뽑히고 말기 때문이다. 대못 박기는 차기 정부에 자신의 잘못을 전임 정부 탓으로 돌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뿐이다. 어리석은 사람을 일컫는 대못박이만이 대못 박기를 남발한다.

대통령 퇴임 이후에도 유지될 수 있는 정책은 자기 진영만이 아니라 전체 국민을 위하는 정책이다. 전임 대통령의 탄핵으로 출범한 문 정부의 정책은 적잖게 이념화했다. 하지만 임기 말에는 좌우의 가치가 아닌, 보편적 가치의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누구나 반길 정책은 누가 정권을 잡든 연속적으로 유지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정권의 임기 말은 새로운 정책을 구상할 시점이 아니다. 상징 효과나 쇼 효과도 임기 말에는 미약해진다. 개헌(改憲) 등 판 바꾸기 정략도 임기 말에는 별로 효과적이지 않을 것이다. 임기 말에는 ‘정신 승리’ 식의 대외정책이 성공하지 못할 뿐 아니라, 그런 대외정책에서 국내 지지를 얻기도 힘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정책은 당장의 홍보에 치중하기보다, 역사가 좋게 평가할 방향으로 추진해야 한다. 현재의 정치적 반응보다 먼 훗날의 평가를 더 중시해야 한다.

우리는 정치 입문 당시의 초심을 잃은 대통령의 불행한 모습을 자주 보아 왔다. 대통령 누구나 임기 말일수록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ABM 곧 ‘Anything But the Moon’은 헝가리 출신의 캐나다 시인인 조지 시포스가 자연과 인생을 운율에 맞춰 성찰한 시집 제목이기도 하다. 또, ABM은 탄도탄요격미사일(Anti-Ballistic Missile)의 뜻도 있다. 안전과 인생의 성찰은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이에게 언제나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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