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동 문학평론가 서강대 명예교수

‘… 청산(靑山)이 그 무릎 아래 지란(芝蘭)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에 없다/…/지어미는 지애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애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미당 서정주 ‘무등을 보며’)

5월은 가정의 달이다. 푸른 5월은 어린이날, 카네이션 꽃이 피는 어버이날, 스승의날, 성년의날, 부부의날 등이 있어 가정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하는 달이다. 가정은 혈연으로 창조된 삶의 ‘보금자리’다. 그래서 가정은 휴식과 정서적인 안정을 제공하는 공간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개인적인 성장과 발전, 인간관계를 펼치는 중심 무대다.

가정은 인간의 삶과 연결된 보다 깊고 보다 우주적인 여러 측면에 묶여 있어, 사회 구성의 원형(social archetypes)이기도 하다. 가정을 가족들의 힘과 후원, 그리고 그들의 정서적인 안정의 근원이라고 말하는 것 또한 이러한 사회학적인 문맥에서다. 만일 사회의 기본 단위인 가정이 해체되면, 개인의 뿌리가 흔들려 불안한 삶을 살게 돼 사회 전체가 무너지는 대재앙을 맞게 된다.

건강한 가정이란, 부부가 기본적으로 안정된 경제적 바탕 위에 상호 존중의 민주적 평등 관계에서 열린 대화를 하고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함께 바라보는 즐거움을 누리며 건강한 시민의식을 가지고 가정과 사회를 조화시킬 수 있는 ‘집’을 의미한다. 물론 여기에는 인간적인 예의와 교양을 바탕으로 가족 상호 간의 애정과 사랑, 존경심이 함께해야 한다. 현대사회는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위치 역할(status roles)’을 중심으로 한 가부장적 제도를 벗어나 가족 구성원 간의 민주적인 관계를 통한 가정관리 방식을 제도화하고 있다.

그러나 가정 문제의 사회학은 간단치 않다. 현대사회가 보여주는 가정의 실상(實像)은, 무너지고 해체되는 양상을 보여 단합과 결속을 상징하는 과거, 즉 신화적인 옛날의 가정과 항상 비교된다. 경우에 따라서 가정의 이미지는 애정이 묻어나는 유대감과 친밀감 있는 ‘집’이 아니라, 억압과 책무와 이기주의가 난무하는 경기장(arena)에 비유돼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므로 가족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느 하나의 법률적 잣대보다는 사회학은 물론 인류학·심리학·경제학 등 학제(學際·interdisciplinary) 연구를 바탕으로 한 접근이 필요하다.

자녀가 태어나면 아버지 성을 따르게 하는 ‘부성(父姓) 우선주의’를 폐기하는 법 개정을 정부가 추진한다고 한다. 이런 결정도 페미니즘의 영향과 인구 감소와 결부된 혼외자(婚外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오랜 세월 한국인의 가정을 지탱해온 ‘부성 우선주의’를 낡은 문화적 개념으로 보고 편이에 따라 단순 폐기한다면 너무 성급한 조치가 아닐까. 아빠 성(姓)을 따르게 한 우리 민법 조항은 ‘황금시대’에 엄격한 혈연을 중심으로 이상적인 단합과 결속을 다져왔던 가족관계의 인류학적 경험과 지혜에 기초하고 있지 않은가.

웃음의 꽃이 피는 가정의 달 5월! 가족 구성원들 간 끈끈한 사랑의 유대관계와 스승에 대한 존경심은, 편이적인 이익보다 천륜(天倫)이라고 말하는 혈연과 인간적인 애정, 그리고 숭고한 도덕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리 강조해도 잘못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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