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아름다운 봄날입니다. 담벼락 아래 살포시 피어난 노란 민들레가 앙증맞고, 이 산 저 산에 분홍빛 물감을 쏟아낸 철쭉의 흐드러짐도 봄날이 가는 것을 아쉽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봄날이면 늘 기억 속에 떠오르는 분이 있습니다. 아버지, 나의 아버지입니다.
저는 동네에서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제가 한의원 문을 열고 출근할 때마다 맨 처음 마주치는 풍경은 아버님 초상화입니다. 아버지는 제게 이래라저래라 많은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당신께서 이웃들을 위해 활동하셨던 모든 것이 제게는 자연스럽게 본받아야 할 교훈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화목한 가정의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나셨고, 오랫동안 한학(漢學)을 공부하셨습니다. 훗날 고향 경기 여주에서 젊은이들에게 한학을 가르치셨고, 무엇보다 배움의 중요성을 제자들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의 많은 사람에게 항상 강조하셨습니다. 배워야만 무식에서 벗어날 수 있고, 배워야만 잘살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을 지니셨던 분입니다. 아버지의 그런 뜻은 고향에 중학교가 설립되는 데도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당시 여주군 대신면에는 대신중학원이 있었는데, 이 학원이 1952년 중학교로 교육부 인가를 받기 위해선 재원이 필요했습니다. 그때 아버지는 당신 소유의 논밭을 학교에 희사하셨습니다.
또한 동네에 개척교회가 1948년 처음 생길 때는 이웃집들을 방문해 교회 건축에 필요한 서까래나 기둥감을 내어놓도록 협조를 구했고, 교회가 완성될 때까지 하루씩 나와 부역을 같이 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교회가 완성되면 그곳에서 마을 회의도 하고, 마을 청년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폭넓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 당시 우리 동네는 벽촌이었고, 형편이 어려운 이웃이 많았습니다. 마땅한 일거리도 부족했고, 나무를 팔아 밥벌이 삼는 사람도 많았는데, 밤이면 동네 주민들이 외딴집에 모여 노름하기 일쑤였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그렇게 살면 삶의 미래가 없다면서 투전판에 가서 화투를 모두 뺏어 오시고 큰소리로 이웃들에게 훈계하셨는데, 그런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저와 아버지는 똑 닮은 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걸음걸이입니다. 아버지는 먼 곳에서 걸어오셔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왜냐면 걸으실 때마다 마치 사관생도처럼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반듯하게 걸으셨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반듯하게 걷는 게 영락없이 아버지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제가 고등학생일 때 형님과 함께 방학이면 아버지께 명심보감 등 한문을 배웠는데 가끔 중국 역사와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늘 이웃을 사랑하고, 동네의 어려운 일에 앞장서셨던 아버지의 생전 모습은 제가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고, 평생 존경하는 그런 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도 한의원 문을 열며 아버지 초상화 앞에 멈춰서 묵념을 합니다. 봄날이 가고 있습니다. 먼 기억 속에 떠오르는 아버지 모습을 따라 나의 하루하루도 충만한 일상으로 채워집니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막내아들 서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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