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훈 산업부 차장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최근 회원사에 보낸 기업 임금조정 권고를 통해 “고임금 대기업은 올해 임금인상을 최소 수준으로 해 달라”며 “대신 고용 확대, 사회적 격차 해소, 공정한 보상체계 구축 등에 중점을 둬 달라”고 요청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딛고 좋은 실적을 올렸다고 임금인상 파티를 벌일 게 아니라, 청년실업과 대·중소기업 임금 격차 등 사회적 갈등 완화에 대기업 노사가 힘을 모아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이달 중 노사 상견례를 하고 임금·단체협상(임단협) 시즌에 들어갈 자동차업계 분위기를 보면 ‘상생을 위한 희생’을 기대하긴 어렵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 노조는 오는 12∼14일 임시대의원회의를 열어 올해 임단협 요구안을 정하고, 이달 말쯤 회사 측과 상견례를 할 예정이다. 노조는 임금 인상, 성과급 지급, 일자리 유지 등을 요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해 11년 만에 기본급 동결에 합의했으나, 올해는 ‘제대로 된 보상을 받아내겠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여기에 MZ세대(1980∼2000년대 출생)가 주축이 돼 지난달 출범한 사무·연구직 노조도 변수가 될 전망이다. 교섭권은 기존 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차 지부가 갖지만, 사무직 노조의 목소리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투쟁 중심 기성 노조에 반발하는 새로운 노조 탄생에 주목하지만, 사실 사무직 노조의 구성 배경은 성과급 불만이었다. 지난해 임협 합의안에 대해 젊은 사무·연구직들을 중심으로 부결운동이 벌어진 일도 있다. 기아 노조는 현대차보다 더 강성이다. 지난해 기본급 동결에 결국 동의했지만, 그 과정에서 4주간 부분파업을 벌이며 완강히 맞섰다. 기아 노조는 올해 임협에서 기본급 월 9만9000원 인상, 정년 65세 연장과 ‘지난해 영업이익의 30%’ 성과급 지급을 요구할 계획이다.

르노삼성차는 지난해 임단협도 끝내지 못했다. 노조는 임금인상, 성과급 지급, 정비사업소 폐쇄 철회 등을 요구하며 지난 4일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한 상태다. 6일엔 서울 도봉사업소를 점거하고 상복(喪服)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노조는 기본급 7만1687원 인상, 격려금 700만 원 지급 등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790억 원 적자를 낸 르노 삼성차는 파업으로 XM3 유럽 수출 물량을 제때 공급하지 못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국지엠 노조도 기본급 인상과 성과급 지급을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자동차 노조의 이 같은 행보는 국민 눈높이와는 괴리가 있다. 경총에 따르면, 국내 5∼9인 사업장 근로자 월 평균임금을 100으로 놓았을 때 500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의 월 평균임금은 199.1에 달했다. “대기업 근로자의 지나친 임금인상은 중소기업이나 취약계층에 상대적 박탈감을 주고 사회적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경총 지적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대기업 노조들이 지금이라도 임금·성과급 인상 요구 대신, 그 액수만큼을 일자리 창출과 중소협력사 지원에 쓰라고 사측에 요구한다면 어떨까. ‘귀족노조’라는 비아냥 섞인 오명을 씻고 노조가 사회통합의 주역으로 국민의 더 큰 지지를 얻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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