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드라마가 날개 없이 추락하고 있다. 시청률 40∼50%에 육박하던 ‘국민 드라마’는 온데간데없고 급기야 시청률 ‘0%대 드라마’가 속출하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건, 이 같은 상황이 이슈조차 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상파 드라마의 몰락이 만성화됐다는 의미다. 지상파 3사의 기세가 등등하던 시절부터 수십 년간 쌓아온 탑은 불과 10년 사이 맥없이 무너졌다.

◆인력유출·불안정한 편성·스타들의 외면 ‘삼중고’

MBC 수목극 ‘오! 주인님’은 최근 전국 시청률 0.9%(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했다. 이번 주 종방하지만 반등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1회가 기록한 2.6%가 최고 성적이다. 7일 첫선을 보인 KBS 2TV 금요드라마 ‘이미테이션’ 역시 전국 기준으로 1%(1부), 0.9%(2부)에 머물렀다. 두 드라마는 각각 배우 이민기·나나와 god 데니안·티아라 지연·SF9 찬희 등 아이돌 출신 배우를 대거 투입했지만 시청자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지상파 드라마는 케이블채널에 이어 종합편성채널이 자리를 잡으며 주도권을 내줬다. 맨파워를 유지 못 한 것이 뼈아팠다. 드라마는 스타 PD·작가·배우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작가와 배우는 방송사 소속이 아니지만 공채 출신 PD들은 지상파 드라마 권력을 유지하는 근간이었다. 하지만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잇따라 이탈하면서 “실력 있는 PD가 없다”는 하소연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유능한 선배들의 이탈로 후배 양성도 한계에 봉착했다. 타성에 젖은 지상파가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은 것도 패착의 원인이다. 타 채널들이 거액의 집필료와 출연료를 제시해 스타 작가·배우들을 영입해 대작을 준비한 반면, 지상파는 기득권을 주장하며 낮은 보수를 강요했다. 한 중견 드라마 외주제작사 대표는 “드라마 시장에서 지상파는 더 이상 ‘갑’이 아닌데 협상 과정에서 답답함을 느낄 때가 많다”며 “무엇보다 제작비 수준이 낮고 제작 환경이 좋지 않으니 좋은 배우나 작가가 지상파를 기피한다”고 토로했다. 편당 제작비가 100억 원 안팎에 이르는 드라마 때문에 적자가 커지자 지상파는 제작 편수를 줄이며 정규 편성을 손대기 시작했다. ‘월화’ ‘수목’ ‘주말’ 드라마 편성 체계가 붕괴됐다. ‘시청자와의 약속’인 편성이 흔들리자 특성 시간대 지상파 드라마를 보던 시청자들이 이탈했다. ‘오! 주인님’은 올해 처음 편성된 MBC 수목극으로 시청자 입장에서는 익숙지 않은 편성일 수밖에 없다.

◆돌파구는 없나?

드라마 사업부를 분사해 드라마 기획·제작을 전문하는 ‘스튜디오S’를 출범시킨 SBS의 행보는 지상파 드라마의 활로를 제시했다. 주력 드라마 편성 시간대를 주말로 옮긴 SBS는 최근 ‘모범택시’로 15% 안팎의 높은 시청률을 구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앞서 ‘열혈사제’ ‘스토브리그’ ‘펜트하우스’ 등의 성공 사례를 낳으며 지상파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인지도 높은 배우나 작가들에게 회당 1억 원에 육박하는 개런티를 제시하며 공격적으로 맨파워를 강화한 결과다. SBS 금토극이 연이어 성공을 거두자 이 자리에 편성을 원하는 작품들이 줄을 섰다는 후문이다.

넷플릭스에 주도권을 빼앗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에서 경쟁력을 획득하는 것도 관건이다. 지난해 tvN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사이코지만 괜찮아’와 JTBC ‘이태원 클라쓰’ 등은 넷플릭스를 통해 공급돼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반면 지상파 드라마는 지상파 3사와 SK텔레콤이 합작한 OTT 플랫폼 웨이브 공급에 주력하고 있다. 넷플릭스의 공세 속에 웨이브의 시장 확장성은 아직 미약하다. 이재원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연구소 연구위원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등 모바일 기기로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드라마를 시청하는 환경의 변화 속에서 지상파 드라마는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OTT에 비해 시장 적응이 느리다”며 “최근 넷플릭스 외에도 영화 투자·제작사들이 드라마 시장에 뛰어들어 대규모 자본을 쏟아붓는 반면 지상파는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적어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아쉽다”고 지적했다.

안진용 기자
안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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