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경원의 세상을 바꾼 디자인 - (6) 로낭·에르완 부홀렉 형제
현대인이 필요로 하는 ‘물건’보다는 현대사회에 결핍된 ‘자연’ 만들어
소파·옷걸이·의자 등 평범함 속에 기계적 기능주의 넘어선 고차원적 가치 효과적 표현
이들이 디자인한 소파 ‘오피시나(Officina)’를 보면 이들의 디자인이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는지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다. 세 명이 앉을 수 있는 소파인데, 소파가 갖는 특유의 묵직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산뜻한 느낌으로 부풀어 있는 쿠션 부분이 눈에 띈다. 소파를 이루는 묵직한 나무 구조는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느다란 철 구조로 단순화돼 있다. 그리고 쿠션 부분의 풍성한 양감은 무게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마치 부푼 풍선처럼 가벼워 보인다. 얼핏 보면 기존의 소파와 비슷한 것 같지만 사실 어느 부분도 고리타분한 기존의 모습으로 돼 있지 않다. 혁신적인 디자인을 덤덤하게 표현하는 것이 이들의 매력인데, 결과적으로는 현대적인 기품과 우아함을 잘 표현하고 있다. 부홀렉 형제의 디자인은 대체로 이렇게 은은한 가운데에 독특하고 귀족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특징이 있다.
‘스틸우드(Steelwood)’ 의자에서는 자연주의적이면서도 일상적인 느낌이 잘 융합돼 있다. 이 의자의 모양은 매우 평범한데, 자세히 보면 등받이 구조는 철로 돼 있고, 다리와 안장 부분은 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한 의자를 이렇게 서로 다른 재료로 만드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철로 이뤄진 기능적인 부분으로 나무 재질들이 스며들 듯이 결합돼 있다. 그래서 매우 기능적이고 현실적이면서도 자연성이 잘 융합돼 있다. 이렇게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물건 속에 고차원적인 자연 가치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진정 어려운 일인데, 이 의자에서는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게 이뤄지고 있다. 철로 다양한 형태를 가공하는 것은 나무보다는 훨씬 쉬운데, 이 의자에서 복잡한 부분은 철로 만들어졌고, 나무는 단순한 형태로 만들어져 제작의 효율성을 고려한 흔적도 보인다.
이렇게 평범함 속에 자연성을 표현한 것은 다른 스틸우드 시리즈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옷걸이에서는 구조적으로 연결하는 부분을 철 소재로 해 자연스러우면서도 세련된 현대적인 느낌이 잘 표현돼 있고, 스툴에서는 안장 부분을 흰색의 철 소재로 해 평범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이 잘 표현돼 있다.
그런데 자연의 실현이라는 디자인 이념이 보다 더 본격적으로 표현된 것은 ‘베지털 블루밍(Vegital Blooming)’ 의자에서였다. 3년간 나무의 생태를 연구해 디자인했다는 이 의자는 마치 나무가 자란 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데, 재료는 플라스틱이다. 자연성은 이 의자의 바닥이나 등받이의 형태에서 볼 수 있는데, 나무나 식물의 불규칙하면서도 조직적인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 나뭇가지들이 서로 불규칙하게 겹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상당히 단단하게 구조화돼 있다. 이런 구조적 처리로 인해 플라스틱 재료의 공업스러움이 상당히 감퇴되고, 자연성이 간접적으로 실현되고 있다. 그래서 일반적인 플라스틱 제품들이 가진 딱딱하고 저렴한 느낌을 이 의자에서는 잘 찾아볼 수 없다.
나무의 유기적 구조를 적용했던 블루밍 의자는 이후 ‘베지털 그로윙(Vegital Growing)’으로 발전됐다. 형태를 보면 불규칙함이 보다 더해졌고, 나무의 자연스러운 형태에 더 가까워졌다. 이런 불규칙한 형태의 의자를 플라스틱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더욱더 첨단의 기술이 필요하다. 그런데 의자 모양이 자연에 가까워질수록 그런 기술의 흔적들은 증발되고 나무의 자연스러운 형태만이 남아 있다.
이들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알그(Algues)’에는 이들의 디자인이 향했던 자연성이 더욱더 세련된 모습으로, 더욱더 추상화된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이들의 디자인이 왜 세계 디자인계를 주도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수양버들 같기도 하고 바닷물에 이리저리 휩쓸리는 해초류 같기도 한 울창한 모습의 ‘무엇’인데, 정확하게 용도를 알 수는 없다. 일반적으로는 실내 공간을 구획하고 시선을 가리는 가림막으로 많이 쓴다고 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불규칙한 형태와 흐물흐물한 시각적 질감을 주는 구조는 완전한 형태의 디자인이라고 하기에는 좀 모자람이 있다. 게다가 어디에 어떻게 쓰는 건지 기능도 확실하지 않다. 이런 디자인을 어떻게 프랑스를 대표하는 디자이너들의 대표작이라고 하는 건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디자인 내면에 담긴 가치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 디자인을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면, 불규칙하게 생긴 모양들이 나뭇가지처럼 생긴 작은 플라스틱들이 수없이 많이 끼워진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멀리서 봤을 때는 무슨 식물의 넝쿨처럼 보였는데, 가까이서 보면 식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있다.
알그의 한 단위 형태를 보면 플라스틱 재료로 만들어진 구조인데, 마치 버드나무 잎처럼 불규칙한, 그러나 살아있는 식물처럼 보인다. 플라스틱으로 된 기본 형태는 봄날의 새싹처럼 여려 보이나 특별히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다. 이 단위 형태 여러 개를 레고 블록처럼 이리저리 끼워 소비자가 원하는 형태로 자유롭게 만들 수 있게 돼 있다. 그런데 어떻게 만들든 식물들이 엉킨 숲이 만들어진다.
그렇다. 이 알그 디자인의 기능은 자연을 만드는 것이다. 부홀렉 형제는 특정한 용도를 가진 물건을 디자인하는 기존의 디자인 관점을 부정하고, 오히려 수많은 디자인을 만드는 재료 상태로 디자인을 향하게 했던 것이다. 그들은 현대인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보다는, 현대 사회에 결핍된 자연을 만들려고 했다. 기능주의적 시각에서 이 디자인은 겨우 실내 공간을 나누는 장막이나 파티션 정도로만 파악될 뿐이지만, 부홀렉 형제는 그런 기계적 기능주의를 넘어서서 대자연의 실현이라는 보다 차원 높은 이념을 이 작은 플라스틱으로 실현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처럼 프랑스의 부홀렉 형제는 일상적인 물건을 디자인하는 실력도 뛰어나지만, 그런 실력을 바탕으로 자연을 실현하고자 하는 발걸음을 오랫동안 걸어왔다. 그런데 그런 발걸음은 21세기 들어오면서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는 것이 됐고, 그만큼 세계 디자인의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됐다. 아마 그런 흐름 속에서 부홀렉 형제는 앞으로도 수많은 명작을 내놓으면서 21세기 디자인을 이끌어 나갈 것이다.
현디자인연구소 대표
■ 부홀렉 형제
- 로낭 부홀렉(1971년)·에르완 부홀렉(1976년) 형제, 프랑스에서 출생
- 각각 파리 국립 미술학교, 세르지 퐁투아즈 미술학교 졸업
- 1999년 파리에 디자인 스튜디오 ‘Bouroullec studio’ 설립
- 간결하며 프랑스적 기품이 있는 디자인으로 인기
- 1999년 뉴욕 가구박람회 신인 디자이너상 수상, 2002년 일본 엘르 데커레이션에서 올해의 크리에이터로 선정, 2005년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최고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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