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하(1913∼2000)·고임생(1912∼2012)

아버지는 우리를 키울 당시 제주 시내 도심지에서 ‘태원공업사’라는 간판을 내걸고 함석 일이라고 부르던 영세수공업을 하셨다. 함석을 재료로 물동이, 여로, 양동이, 쓰레받기, 물통 등 가재도구를 만들어 가게에 차려 놓으면 어머니께서는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팔아 생계유지를 했다.

그러나 가게에서 일용품을 파는 것으로는 많은 식구를 먹여 살리기가 몹시 힘들었다. 더 많은 수입을 내려면 겨울철 각급 기관을 상대로 난로 연통을 가설하는 일을 해야 했다. 그 수입금이 가정을 유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난로 연통을 만드려면 계속 망치질을 해야 해 온 동네가 시끌벅적해졌다. 큰 철판통으로 난로를 만들 경우 일일이 편편하게 해 놓고 만들어야 하니 여간 시끄러운 게 아니었다. 동네 주민들에게 욕을 먹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렇게 아버지께서 불철주야로 일한 대가로 5남 4녀 중 다섯 형제는 최고학부를 나오게 됐고 네 자매는 고등교육을 마쳤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어려서부터 가훈으로 지켜야 한다며 주자의 권학문에 나오는 시의 첫 구절을 명심하라고 하셨다. ‘소년이로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 일촌광음불가경(一寸光陰不可輕)이라, 미각지당춘초몽(未覺池塘春草夢) 계전오엽이추성(階前梧葉已秋聲)’. ‘소년은 금방 늙고 학문은 이루기 어려우니 짧은 시간이라도 가벼이 여기지 말라, 못가의 풀들이 봄 꿈에서 깨기도 전에 섬돌 앞 오동나무 잎은 가을 소리를 낸다’는 의미다. 우리 남매들은 아버지께서 당부하신 고사성어를 한시도 잊지 않고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갑자기 뇌경색 증세로 3개월 정도 동네 병원에 입원해 계시던 중 2000년 7월 세상을 떠나시고 말았다. 어머니는 나의 막내 누이가 보살피고 있었는데 내가 찾아가 뵐 때마다 “오래 살아 미안하다”고 말씀하셨다. “어머님!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오래오래 살아야지요.” 그러나 인생은 유한한 것. 100세를 일기로 2012년 8월 한 많은 생을 마감하셨다.

우리는 제주 한림읍 선영 어머니를 모신 묘 비석에 이런 글월을 새겨 놓았다. ‘어머님의 정다우신 목소리는 귀에 남아 있고 영롱하신 눈빛은 가슴에 살아 있습니다. 9남매를 낳으신 고생이 그 얼마나 컸으며, 손발이 부르트도록 우리를 키우신 그 정성 어데다 비교하리오. 늘 건강에 유의하고 정직하게 잘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마음 졸인 그 세월이 얼마이겠습니까. 어머님은 늘 영리하시면서 능변이셨고 지혜롭게 살아오셨습니다. 부디 저 하늘나라에서 영원토록 편안히 지내시고 우리 형제자매들 모두 큰절을 올리겠나이다.’

9남매를 낳아서 정성 들여 키워주신 부모님! 그러나 살면서 효도 한번 제대로 못하고 부모님을 떠나 보낸 불효자식이 늦게나마 삼가 부모님 영전에 명복을 빌어 올린다.

둘째 아들 정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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