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영 갈등·민주주의 붕괴 사례

2015년 전후 유럽 난민 위기
극우 세력이 기반 넓히는 계기
중남미는 포퓰리즘 정부 폭주


극단주의의 발호와 진영 갈등으로 민주주의가 붕괴한 사례는 시대와 지역을 넘어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중남미와 동남아시아 등 제3세계 국가는 물론 선진국이 몰린 유럽도 예외가 아니다. 전문가들은 이를 근거로, 갈수록 격화하는 한국 사회의 진영 갈등을 결코 가벼이 여겨선 안 된다고 경고한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사례는 진영 갈등이 민주주의 국가를 하루아침에 전체주의의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도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1919년 제정된 ‘바이마르 헌법’ 제1조는 “독일국은 공화국이다. 국가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 국민주권 원칙을 분명히 했다. 영국보다도 먼저 여성의 참정권을 보장했고, 언론의 자유와 양심 및 종교의 자유, 집회의 자유 등을 명문화했다. 여기에 세계 최초로 사회보장제도와 의무교육 등 사회권을 명시해 고전적 자유민주주의와 복지국가를 동시에 구현하고자 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 패전을 딛고 독일을 새로운 중흥으로 이끌 것이란 기대를 받았던 바이마르 공화국은 좌우 진영의 극심한 갈등으로 무너졌다. 비례대표제를 채택해 다양한 정치 세력의 의회 진입이 가능해졌지만, 토론과 합의는 온데간데없고 극좌에서 극우에 이르는 40여 개 정당이 난립해 혼란을 이어갔다. 정당들이 권력 쟁투에만 몰두하다 보니 총리와 내각에 대한 불신임도 끊이지 않았다. 바이마르 공화국 14년 동안 21개의 내각이 들어섰다는 사실은 당시의 정치적 혼란이 얼마나 심했는지 보여준다. 결국 파국이 닥쳤다. 1차 세계대전 승전국들의 과도한 전쟁 배상금 요구에 세계 대공황이 겹치자 극우 민족주의가 더욱 기세를 올렸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무너지고 독일 국민은 아돌프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나치당)이 이끄는 전체주의 체제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갔다.

21세기 들어서도 전 세계가 경제적 양극화에 따른 외국인 혐오와 극단주의 발호로 진통을 겪고 있다. 특히 2015년을 전후한 유럽 난민 위기는 유럽 각국의 정치 지형을 크게 흔들었다. 터키와 헝가리, 폴란드 등 주변부 유럽 국가에서 권위주의적 성격의 정부가 들어섰다. 심지어 이탈리아와 스페인, 민주주의 모범국이었던 프랑스와 영국, 독일에서조차 극우 세력이 지지 기반을 크게 넓히면서 진영 갈등이 격해졌다.

중남미에서는 좌파 포퓰리스트 정부의 폭주로 혼란이 이어지기도 했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이끄는 베네수엘라가 대표적인 사례다. 확인된 원유 매장량이 세계 1위인 베네수엘라는 중남미를 대표하는 자원 부국이지만, 무능한 좌파 포퓰리스트 정부의 통치가 이어지면서 국가 경제가 파탄 났다. 국가 기간산업마저 무너지면서 수백만 명의 국민이 난민이 돼 인근 국가를 떠돌기에 이르렀다. 마두로 대통령은 이런 와중에도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는 데 진영 갈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다.

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13일 “상대를 적(敵)으로 몰아세우고 증오와 갈등을 부추기는 위험의 징후가 우리나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며 “진영 갈등이 심각해지면 사회 혼란이 발생하고 민주주의가 쇠락하는 등 공동체의 존립 자체가 위협 받는 상황까지 이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지영 기자 goodyoung17@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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