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上) 불법사금융 피해 실태

“계좌번호·신분증 있으면 OK”
개인정보 도용, 각종 사기범죄

졸지에 ‘공범’… 신고도 못해
급한불 끄려다 2차·3차 피해
43% “별 대처없이 이자 감당”


SNS 등 온라인상에서 미성년자나 저신용자들을 겨냥한 각종 대출 광고를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자칫 불법사금융업자와 연결될 경우 금전적 피해뿐만 아니라 온라인 사기 등 형사사건에까지 연루될 수 있다.  각종 SNS 캡처
SNS 등 온라인상에서 미성년자나 저신용자들을 겨냥한 각종 대출 광고를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자칫 불법사금융업자와 연결될 경우 금전적 피해뿐만 아니라 온라인 사기 등 형사사건에까지 연루될 수 있다. 각종 SNS 캡처
‘급한 불 꺼드리겠습니다. 부담 없이 연락주세요. 조건 없이 누구나 가능. 010-XXXX-XXXX.’

요즘 온·오프라인상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고 중 하나가 대부업체의 불법대출 광고다. 기본적인 금융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기’라고 의심할법한 내용이다. 하지만 이른바 ‘급전’이 절실한 사람들, 특히 뚜렷한 고정소득이나 일자리가 없어 금융권 대출에 접근하기 어려운 청년들에게는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처럼 받아들여진다.

최근 문화일보와 만난 김민서(20·가명) 씨가 지난해 8월 불법사금융인 ‘작업대출’의 덫에 걸려든 계기도 페이스북에 올라온 불법대출 광고를 통해서였다. 친구 A 씨의 페이스북 계정에 올라온 광고라서 이상한 내용일 것이라고는 의심하지 못했다. 김 씨가 건 전화를 받은 대출업자는 자신을 A 씨의 지인이라고 소개하면서 계좌번호와 신분증만 있으면 100만 원 수수료만으로 바로 500만 원을 대출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은행에서 돈을 찾은 김 씨의 손에 쥐여진 돈은 고작 70만 원이었다. 3개월 후 김 씨는 자신이 온라인 사이트에서 중고 노트북, 골프장비 등을 판매하며 사기를 친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금융사기 방지 앱 ‘더치트’에 김 씨로부터 사기를 당했다고 신고된 피해금액만 무려 800만여 원에 달했다. 작업대출업자들이 김 씨의 개인정보로 중고나라 사이트에서 일종의 ‘가외 수입’을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졸지에 김 씨는 전국 각지에서 수배하고 있는 ‘중고나라 사기꾼’이 됐다.

13일 관련 전문가와 피해자들에 따르면 작업대출과 같은 불법 금융범죄가 사회적 이슈로 부상했던 2017년 이후 불법대출 수법은 이전보다 더 고도화·음지화되고 있다. 과거 대출업자들이 피해자들에게 대출을 받게 한 후 수수료를 챙기거나 고금리 이자를 종용했던 수법과 다르게 최근에는 김 씨의 사례처럼, 불법대출 과정에서 넘겨받은 피해자들의 개인정보로 휴대전화를 여러 대 개통하거나 또 다른 사기범죄에 활용하고 있다.

가출 청소년이었던 이윤식(23·가명) 씨는 18세 때 선배들의 소개로 휴대전화를 개통해주는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 수법인 ‘내구제 대출(나를 구제하는 대출)’로 휴대전화 3대를 개통해 순식간에 800만 원의 채무를 떠안았다. 통신요금과 통신기기값만 갚으면 되리라고 생각했던 이 씨는 서울보증보험으로부터 채무상환 독촉 통지서를 받은 후에야 자신의 명의로 개통된 휴대전화를 통해 각종 소액대출이 발생한 사실을 알았다. 5년이 흐른 지금도 그는 건설현장에서 하루 일당 11만 원 일용직으로 일하면서 빚을 갚고 있다. 이 씨는 “열심히 일한다고 해도 빚에서 언제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피해자들은 자신도 범행 가담자라는 생각에 신고도 하지 못한 채 안절부절못하다가 오히려 피해를 더욱 키우고 있다. 백승훈 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사무국장은 “불법사금융은 대부분 한 차례 피해가 아니라 2차, 3차 피해로 이어진다”며 “경찰에 신고하려 해도 사기꾼들과 결국 공범이라는 생각에 쉽게 신고하지 못하다 보니 개인정보가 2차, 3차 연쇄적으로 팔리고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서민금융연구원이 지난해 11~12월 저신용자(신용등급 6~10등급) 1만787명 및 대부업체 187개사를 대상으로 한 연례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불법사금융 이용 경험자는 12.9%로 나타났다. 특히 응답자의 73.5%는 ‘불법사금융에 대한 사전 인지 여부’에 대해 “불법사금융임을 알고 (돈을) 빌림”이라고 답했다. 또 불법사금융 이용 후 대처방안에 대해 ‘높은 이자를 감당하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43.4%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문제는 최근 가계부채의 급증에 따라 정부가 대출 규제를 강화하면서 저신용자뿐만 아니라 일반 서민들에게도 시중은행 등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제도권 금융에 접근하는 문턱이 더욱 높아질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과도한 대출 방지를 위해 기존에 은행별로 적용해오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 규제를 오는 7월부터 개별 차주마다 적용하기로 한 상태다. 기존에도 규제지역의 9억 원 초과 주택이나 연 소득이 8000만 원 넘는 이가 1억 원 초과 신용대출을 받는 경우 DSR 규제를 적용받았지만, 이번 대책은 범위를 6억 원 초과 주택으로 넓혔다. 이미 서울의 아파트 평균 가격이 11억 원에 달했다는 집계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내 집 마련 등 대출이 필요한 서민들의 대출 한도나 대출 절차가 더 까다로워지는 것이다.

또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현재 24%인 법정 최고금리는 오는 7월 7일부터 20%로 낮아질 예정이다. 최고금리 인하는 저신용자들이 대부업체 등을 이용할 때 이자 부담을 덜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도에서 시행되는 것이지만, 오히려 저신용자들이 대부업체마저 이용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금융위는 법정 최고금리 20%를 적용할 경우 불법사금융으로 밀려날 인원을 최소 약 3만9000명으로 예상했다.

특별기획팀 = 나주예·박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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