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남매 키워주신 부모님

언제나처럼 오후 4시 50분이 되자 아버지의 휴대전화 벨이 울린다. “아버님, 곧 어머님 도착하세요.” 오늘도 노치원(노인주간보호센터) 하교를 도와주는 복지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는 소파에서 일어나 신발을 신고 골목길로 엄마를 맞이하러 나가신다. 아버지는 91세, 엄마는 88세. 엄마에게 반갑지 않은 뇌경색이 온 것은 지금으로부터 11년 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찍 손을 써서 중증환자는 면했다는 것이다. 그즈음부터 집안 살림살이는 아버지의 몫이 됐다.

그 흔한 숟갈 몽당이 하나 없는 집안(엄마의 표현을 빌리자면)의 맏며느리로 시집온 엄마의 일생은 오로지 내 남편, 내 자식이 전부였다. 내리 오 남매를 낳고 배운 것 없이 먹고 살려면 몸이 고달프다며 여자도 배워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던 엄마. 마당 한편에 돼지우리를 만들어 돼지를 키우기도 하고, 온갖 노동 일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죽기 살기로 일하셨던 엄마. 오 남매를 모두 대학공부시키며 동네 사람들에게 놀림감이 되기도 하셨던 엄마. “쥐뿔도 가진 거 없으면서 무슨 딸들까지 대학공부를 시켜….” 이웃들이 수군거렸지만 엄마는 꿋꿋하셨다. 등록금 낼 시기가 다가오면 엄마가 이 집 저 집으로 돈을 꾸러 다니던 모습이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마치 어제 일처럼 눈에 선하다. 그렇게 평생을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 살아오신 엄마는 고된 노동일로 무릎관절은 다 망가지고 어느 한구석 안 아픈 곳 없이 몸 여기저기가 고장 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뇌경색으로 쓰러지셨다.

평생을 선비처럼 살아오신 아버지가 주부로 변신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부터였다. 엄마가 부엌 일을 못하게 되자 아버지가 도맡아 하신 지 어언 10년이 훌쩍 지나갔다. 물 한 그릇도 엄마 손을 빌려 드시던 분이 못 만드는 음식이 없고 김치까지 담그는 요리사가 다 되셨다. 다행히 아버지는 하루에 두 시간씩 걷기를 하며 건강 관리를 하신 덕에 정신도 맑으시고 몸도 건강하시다.

어쩌다 잠깐 맑은 정신이 든 날에 엄마가 아버지께 “미안혀. 미안혀” 하시며 눈물을 글썽이기라도 하면 “괜찮어. 괜찮어. 당신이 애들 갈친다고 그래 고생을 해서 병이 난겨” 하고 아버지는 엄마의 두 손을 꼭 잡아 주신다. 그렇게 일주일 내내 고생하시는 아버지를 위해 하루라도 편히 쉬시라고 우리 오 남매는 매주 토요일 부모님 댁에 모여서 집 안 청소도 하고 저녁 식사도 함께하며, 엄마를 목욕탕에 모시고 가는 일을 십 년째 한 주도 거르지 않고 하고 있다.

이제는 뇌 신경이 정상으로 작동되지 않아 엄마가 오줌을 지리기라도 하면 아버지께서 먼저 우리에게 신신당부하신다. “절대 엄마한테 뭐라 하지 말어.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걸 어떻게 혀?” 자식들이 참 잘한다고 동네 어른들께서 칭찬이라도 할라치면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다.

엄마가 자식을 위해 고생하신 것과 아버지가 엄마에게 해 주시는 것에 어찌 비할 수 있겠는가? 아버지, 엄마! 고맙습니다. 아버지, 엄마와 부모 자식의 연으로 맺어질 수 있어서… 그리고 사랑합니다. 부디 오래오래 저희 곁에 머물러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유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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